성인이자 교부이며 순교자였던 유스티노(Justinus, 100/11?~165)는 이른바 「평신도 신학자」였다. 2세기 호교 교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로 꼽히는 유스티노의 구도의 자세와 신앙의 열정은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구도의 모범이었다고 할 만하다.
유스티노가 살았던 2세기는 선교활동으로 인해 그리스도교가 크게 확장되던 시기였다. 지중해 연안에서 시작해, 그리스도교 교회는 시리아, 소아시아, 이집트, 아프리카 등의 내륙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호교가」들은 먼저 그리스도교를 사람들의 비방과 철학자들의 비판에서 보호하고, 하느님이 단 한 분 뿐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됐음을 보여주면서 우상숭배와 다신교를 논박해야 했으며,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성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말과 개념으로 소개했다. 평신도 신학자 유스티노는 호교 교부로서 당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한 박해에 항의해 여러 권의 호교서를 저술함으로써 당시 사회에서 교회와 그리스도교를 수호했다.
유스티노의 생애에 대해서는 에페소에서 유다인인 트리폰과 나눈 대화를 적은 「트리폰과의 대화」에 묘사된 입교 과정과 그의 순교에 관한 보고, 에우세비오의 「교회사」와 에피파니우스의 작품에 나오는 진술 등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알 수 있다.
그는 팔레스티나의 사마리아 지방에 있는 플라비아 네아폴리스(Flavia Neapolis)에서 100~110년 사이에 태어났다. 그는 이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의 성장과정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생애를 통해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하는 구도자의 자세를 견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참된 철학, 진리를 찾아 다니던 그는 당시 유행하던 철학 사조들에 몰두했다. 교부시대를 풍미하던 철학 사조에는 스토아 철학이 있었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철학, 그리고 피타고라스 철학 등이 있었다.
인생의 참된 의미를 모색하기 위해 이러한 철학 사조들을 탐구하던 그는 마지막으로 플라톤 철학에서 「안식」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날 가이사리아의 바닷가에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되고 그와의 대화 중에서 인간의 모든 사상, 플라톤 사상에도 한계가 있음을 깨달아 비로소 그리스도교에 입교한다.
그는 「트리폰과의 대화」에서 이 순간을 회상함으로써 자신이 신앙에 귀의한 경위를 자세하게 알려준다.
『나는 그분을 더 이상 뵙지 못했다. 그런데 내 영혼 안에 갑자기 섬광이 일어났고 나는 예언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친구들에 대해 사랑을 느끼게 됐다. 나는 그분의 말씀을 마음 속으로 되새기면서 이 철학이야말로 참되고 유익하며 유일한 철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모든 이가 나와 같은 체험을 하여 구세주의 가르침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말기를 바란다』(「트리폰과의 대화」 8).
유스티노가 그리스도교에 심취하게 된 이유는 또 있었다. 그것은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태도에서 느끼게 된 깊은 감동이었다.
『플라톤 학파의 제자였을 때 나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했었는데,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에 직면해서도 용감한 그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악이나 탐욕 가운데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됐다』(「제2호교론」 12).
마침내 130년 경 에페소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유스티노는 이후 진리를 찾아 헤매는 구도자로서가 아니라 참 진리에 매료돼 그 진리를 설파하고 전하는 설교가가 되어 평생을 봉헌된 삶을 산다. 그래서 그는 떠돌이 설교자의 표시로 철학자의 외투를 걸치고 다녔다.
생애의 말기를 로마에서 보낸 그는 이곳에서 많은 작품을 저술했지만 그 중에서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것은 단 세 편 뿐이다. 첫째와 둘째 호교서, 그리고 트리폰과의 대화를 담은 저술이 그것들이다.
2세기 호교론자들의 저술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는 제1, 2 호교론은 각각 안토니오 피우스 황제와 원로원에 보낸 것이다.
「제1호교론」(Apologia prima)은 68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저술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의 억울함과 부당성을 항의하고 그리스도교와 이교 사상을 비교하면서 모든 이교도들이 참된 진리의 교회로 귀의할 것을 호소하며, 그리스도교의 윤리적 가르침과 종교 예식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15장으로 된 「제2호교론」(Apologia secunda)은 특별히 웅변가 프론톤의 공격에 대한 답변으로 여겨지는데, 전권의 후편 또는 보완이라고 할 수 있다. 직접적으로는 161년경 로마의 집정관 유니우스 루스티쿠스로부터 박해받아 순교한 3명의 처형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쓰여졌다. 「트리폰과의 대화」는 「호교론」이 이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과 달리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유다인들을 향해 쓴 호교서로 유다교 랍비인 트리폰과 사제로 있었던 대화를 바탕으로 155년에 편집된 저술이다. 142장으로 된 방대한 저서이나 불행하게도 머리말과 74장 대부분이 소실됐다.
유스티노는 말년에 로마에서 오래 머물며 설교와 저술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수호했다. 그러다가 165년 다른 6명의 동료들과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유스티노가 신앙에 귀의하고 그 신앙을 증거해나가는 모습은 흡사 조선시대, 박해의 서슬 속에서도 서학을 익히고 그 안에 있는 참 진리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애썼던 우리 신앙 선조들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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