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안 형성
1982년 10월 27일 서울 예수고난 명상의 집에서는 한국 교회 사상 처음으로 80여명의 남녀수도회 장상 성직자 평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전국 수도자 대회」가 열렸다.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을 앞두고 「한국 교회안에서 수도회가 서있는 위치는 어디쯤인지?」 「수도자들은 과연 무엇하는 사람들인지?」 등의 질문을 나누며 이 나라 이 민족과 더불어 사는 수도회의 좌표를 설정하기 위한 자리였다.
「수도생활의 본질적 요소」 「수도자의 뿌리 의식」 「수도자의 사도직」 「수도자의 양성」 등 4개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수도자 대회는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 준비라는 의미와 함께 2백년 가까이 이땅에서 성장해온 수도회의 현주소를 면밀히 분석 반성하고 미래의 사회와 교회가 필요로 하는 수도회와 수도자상을 모색하는 획기적인 계기였다는 평가를 모았다.
현 이한택 주교가 담당을 맡았던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기념 사목회의 수도자의안 준비위원회와 한국 남녀수도회 장상연합회가 공동으로 준비한 대회에서 참석자들은 4개 주제를 통해 예수 추종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 자신들의 생활을 쇄신하고 전 인류와 깊은 관계를 가진 하느님 백성의 일부로서 어떻게 이웃에게 봉사할 것인지를 모색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이와관련 한순희 수녀(성심수녀회?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처음 시도된, 공동의 길을 가는 다양한 수도자들의 상호 교환이 이루어진 뜻깊은 모임으로 그 진지함이 아직까지도 마음에 살아있다』고 평했다.
대회를 통해 수도자들은 한국 천주교 전래 3백주년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주제 발표후 소집단에서 심도있는 의견 교환 토의 과정을 통해 수도생활 핵심 요소들을 요약, 의안의 기본 내용들을 형성했다.
내용 및 배경
「수도생활」 「양성」 「사도직」 「반성과 전망」 등 4개장에 걸쳐 총 36항으로 구성된 의안은 전체적으로 수도자의 신원과 수도생활의 근본이 되는 핵심 요소를 확인하고 양성의 각 단계별 요소와 지침, 계속적 양성과 선교사 양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한 수도자의 사도직 의미와 한국 상황 안에서의 전망을 제시했으며 수도생활을 분석 비판 반성하는 한편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고 제안 사항들을 담았다.
「수도생활의 본질」 부분에서는 하느님 체험과 수도자의 뿌리는 무엇인지, 또 기도생활 공동체생활 그리고 사도적 봉사 관상수도회의 역할 등을 다루었다. 특히 같은 맥락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복음에 바탕을 둔 창립자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려는 노력과 창립자 정신을 현시대와 교회의 필요에 민감하게 응답하고 쇄신하려는 노력이 요청됨이 강조됐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의 「쇄신」 「현대에의 적응」을 주요 배경으로 하면서 「회원이 현대인이라는 것을 명심하여 각 수도회의 고유 은사에 충실하면서 오늘의 한국 교회와 사회에 알맞는 수도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천명한 「양성」 부분은 무엇보다 「수도자는 한국 천주교회 3백년대를 향하여 걸어가면서 더욱 더 갈리지 않는 마음과 지혜를 다하여 부르심에 성실하게 응답하는 용기와 상호 협력을 요청받는다」는 내용을 언급했다.
또한 「사도직」에 대해서는 진정한 사도직은 먼저 참된 수도자가 되는 것임을 밝히고 수도자는 「그 존재 자체가 사도적」이며 사도직 활동에 있어서 요구되는 것은 겸손한 마음과 섬기는 자세임이 강조되는 한편 특별히 사도직 수행에 있어 시대의 징표에 민감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러한 의안의 기본적 취지는 「급변하고 있는 한국의 사회상황과 한국 천주교회 300년대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수도자는 교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을 반성하고 정립해야 한다는 도전속에 민족 복음화의 과제, 토착화, 참다운 쇄신 등 시대의 새로운 요청에 부응하여 복음 선포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사도적 필요에 응하는 의욕에 찬 새 출발을 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즉 변화하는 한국 상황안에서 수도생활의 근본과 도전 받는 문제에 대한 수도자들의 고민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당시 수도회들이 안고 있던 고민과 도전들이라 한다면 수도회들의 고유 카리스마 퇴색, 정체성 부족과 신원의 위기감 등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이는 70~80년대 한국 교회의 외형적 성장에 맞추어 활동과 기능 위주의 삶이 커졌고 그런 가운데 수도회들은 카리스마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일 중심의 사도적 생활에 치중하게 됐다.
기도와 사도직의 부조화 현상 등이 빚어졌고, 수도자들의 고유 영역인 「영성적인 존재」에 대한 의미는 퇴색되면서 기능적 존재로서의 역할로 부각되어지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특히 활동 수도회들은 선교를 위해 교회가 필요로 하는 곳에 수녀를 파견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에서 수녀들을 모두 본당에 보내야 했고 유치원 학교 병원 등 수도자를 요청하는 곳에도 수녀의 손길을 보태야 했다. 「고유성」을 내세우며 각 본당 시설 등의 청을 거절할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성가소비녀회 총장 이완영 수녀는 『고유성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한국 사회와 교회의 필요에 응하여 삶의 양식마저 바꾸며 적응해 오는 동안 서로 너무 많이 닮은 꼴의 수도회들이 된 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수도자 의안은 「반성과 전망」 부분을 통해 쇄신과 토착화 및 민족복음화의 과제, 고유한 은사의 발전, 세상을 향한 개방, 공동 기구의 설립 등을 구체적 실천 내용으로 제시했다. 쇄신과 적응을 통하여 한국 현실에 깊이 뿌리 내리는 토착화가 시급하다는 제안과 함께 수도회들은 하느님 말씀이 한국 토양에 육화되도록 하기 위해 이땅의 문화와 전통, 역사와 환경, 한국인의 심성과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구에 주력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밝혔다.
또 각 수도회 카리스마 문제와 관련, 「수도회 은사는 고유하기에 각자 수도회의 은사에 따른 삶의 발전은 각 수도회의 책임」이라는 것을 전제로 했다.
갈라진 그리스도인 형제자매와 비 그리스도교 신자 그리고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과 대화의 폭을 넓히는 작업, 남녀 수도자 장상연합회 산하에 성소계발을 위한 협의회, 수도생활에 관한 공동 연구회 등 몇개의 공동기구 설립 필요성이 명시된 점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반영한 상당히 실천적 내용이었다.
무엇을 남겼나
결국 한국교회 200주년 사목회의 수도자 의안은 남녀 수도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한국이라는 특별한 땅」에 자라고 있는 수도생활의 본질적 과제의 공통점, 즉 「쇄신」「사명」「토착화」「양성」을 다룬 문서라는 것이 의미깊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 교회에서 처음 작성된 수도자의 생활을 다룬 문헌이라는 점에서 한국 교회사 수도회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관계자들은 『그것은 무엇보다 한국교회에서 어떻게 바람직한 수도생활을 살 것인가 하는 존재양식과 질적인 문제에 대한 수도자들의 소망을 표명했기 때문』이라고 의의를 덧붙이고 있다.
한순희 수녀는 『특히 수도자들의 주체성 부족과 수도자 신분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부족한 가운데 세속화 물질화 등 시대의 물결을 거스르지 못하고 있는 현실 상황을 반성하고 수도생활의 근본 요소를 깊이 토의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말했다.
예를들어 「수도자의 진정한 사도직은 먼저 참된 수도자가 되는 것이며 훌륭한 수도 생활을 하는 것이다」(23항) 같은 항목은 1970년대 이후 교회의 선교활동의 활성화가 수도생활의 활동성을 확대했다는 성과를 지니지만 한편 그 여파로 생성된 수도회 자체내 비판의식의 결여, 수도정신을 잃어가는 위험을 내포하던 상황에서 수도자들의 존재적 역할을 강조한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라는 것이다.
수도자의안은 또한 수도회들이 강력하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심화해야 함을 다짐하고 이에대해 새롭게 결심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수도자들에게 강조했듯 복음과 창립자의 정신으로 되돌아갈 것」과 「현대에 맞는 쇄신과 적응을 심화할 것」을 요청하며 「아울러 수도회들이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의해 새로 태어나고 활성화 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부분 등이 그렇다.
의안에서 보여지는 또 하나의 특색있는 강조점은 「한국에서 창설된 수도회든 국제수도회든 우선 한국의 문화와 전통, 역사와 환경, 한국인의 심성과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구」(30항)가 요청됨을 선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앞으로 한국교회 수도자들의 과제가 한국이라는 풍토안에 깊이 뿌리 내리고 하느님의 말씀이 한국의 토양안에 육화하도록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것임을 강조한 점도 「토착화」라는 시각에서 높이 평가될 수 있는 부분임을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반성
한국교회 최초의 수도자 생활을 다룬 문헌이라는 치적에도 불구하고 수도자의안은 수도 생활이 다양한 위기와 도전을 받고 있는 현대 사회안에서 그러한 위기를 감당하기에는 원론적이고 평면적이라는 반응을 듣고 있다.
즉 여러가지 급변하는 사회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채 새로운 비전과 생명을 제시하기에는 허술한점이 많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수도생활 전반에 대한 진술이 이원론적이고 교회법적이어서 좀 더 폭넓은 시각에서 긍정적으로 수도생활을 다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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