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를 막 마치고 나왔는데 체칠리아씨가 전화를 했다. 손이 모자라니 감자를 좀 캐잖다. 언제든지 일 좀 시켜 달라고 광고를 했던 터다. 십년 전 첫 소임지에서 밭농사를 지어 보았지만 농사는 아직도 왕 초보 수준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일은 서툴면서 작업복에다 장갑, 그리고 모자까지 갖추고 나오는 나를 「폼생 폼사」라 놀린다. 그럴 때 마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시골 신부 십년에 아직도 농민들의 삶에 스며들지 못한 내가 부끄럽다. 어떻게 해야 나는 내 사랑하는 농민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요즘 웰빙(잘 먹고 잘 사는 것), 몸짱(잘 단련된 근육질의 몸매), 얼짱(잘생긴 얼굴) 등 평범한 사람들을 열등감에 빠지게 하거나, 허튼 꿈을 갖도록 유혹하는 말들을 접하게 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결코 스포츠센터에서 잘 가꾼 몸매나 성형으로 얻은 얼굴로 판가름되는 것이 아니다. 또 웰빙 바람을 타고 주말을 이용하여 농촌의 풍경과 고향의 이미지를 즐기며 근사한 먹거리를 즐긴다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아니다. 미학자 체르니세프스키는『참된 아름다움은 생활』이라고 말했다.
온실 속에서 잘 가꾸어진 꽃보다도 비탈진 언덕에 자리 잡고 온갖 풍상을 이겨낸 나무 하나가 더 아름답다. 손금이 다 닳아 없어진 농민들의 손에서 그들이 걸어온 삶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배운다. 불편한 허리와 불안한 걸음으로 성체를 모시러 나오는 연로한 농민들에게서 느림의 미학을 배운다. 흰머리 파뿌리 되도록 땅 위에서 몸을 단련 시켜온 내 사랑하는 어머니요 아버지들인 그들에게서 천금을 주어도 가꾸지 못할 아름다운 몸매를 발견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 여름 뙤약볕 아래서 무방비 상태로 얼굴을 붉게 태우며 묵묵히 일하는 그들에게서 참된 아름다움은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발견한다.
나는 교회의 사제나 수도자 그리고 신자들이 모두 「생활짱」이 되었으면 좋겠다. 과거의 명성이나 선배들의 노력에 편승하여 얻은 교회의 성가, 사제의 권위, 신자들의 생활이「폼생 폼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관념으로 가득찬 생각과 추상적인 말, 신분이 주는 혜택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은 깨고 나면 개운치 않은 한낮의 꿈과 같은 허망함에 불과하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께서 바로 생활짱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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