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년 포티누스의 뒤를 이어 리옹의 주교에 올랐던 이레네오(130/140?∼202년경)는 당시 영지주의 이단사상 등에 맞서 초기교회의 정통 신앙을 확립한 대표적 교부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로 불릴 만큼 2세기 교회 교부들 중 가장 뛰어난 인물로 꼽히고 있기도 하다.
130년경 태어나 스미르나에서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 이레네오는 스미르나의 주교인 성 뽈리까르보의 제자였다.
당시 그가 로마 사제였던 친구 플로리아노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승 뽈리까르보로부터 배웠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한 것과 관련해 학자들은 『이레네오가 뽈리까르보 주교를 통해 사도시대와 연관돼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곧 사도적 정통성과 권위를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풀이하고 있다.
이레네오가 영지주의 이단 사상 퇴치를 위해 반박의 칼을 빼들었던 배경은 이러하다.
120∼130년경의 교회는 피상적으로만 신앙에 귀의했던 지식인들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던 시기였다.
이레네오가 배격했던 영지주의 체계는 그들의 교설에 토대를 두고 있는데 이들은 사도 전통과 교회 전통의 입장에서 신앙을 받아들이기 보다 신앙을 자기들의 철학과 체계에 맞추어 이용함으로써 지식을 향한 정당한 욕구를 신앙의 신비에 대한 폭력과 거부로 변질시키는 오류를 낳았고 7세기까지 교회에 큰 혼란을 일으켰다.
원래 「영지」(gnosis)란 말은 그리스어로 「인식 앎 지식 또는 깨달음」등으로 번역되는데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믿음의 첫 과정으로, 하느님 그리스도 또는 천상적 신비에 대한 깨달음으로 나타냈던 반면 이단 사상이 등장하면서 「믿음보다 더 중요하고 앞설뿐 아니라 믿음을 능가하는 높은 경지를 일컫는 말」로 통용됐다. 이 때문에 교회 안팎에 많은 혼선이 생겨났으며 숱한 논쟁과 함께 온갖 추리 학설들이 생겨났다.
특히 2세기 중반 영지주의 문헌은 정통 그리스도교 문헌보다 더 주목할 만하고 활기에 차 있었는데 또한 결코 새로운 이단 종교 집단을 형성치 않고 교회 내에 뿌리를 두면서 신자들을 혼동시킨 특징을 가졌다.
최근 한국에서 신흥 종교 형태로 등장해 교회 내에서도 사적 환상, 사적 환청, 거짓된 마리아 신심, 기복신앙, 그릇된 수도원 형태 등 한국 특유의 혼합 미신 체계로 신자들을 해치고 있는 현상들도 일종의 영지주의로 해석할 수 있으며 통일교 운동도 현대판 영지주의의 전형적 혼합 종교의 일종이라고 교회내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리옹의 주교로서 특별히 영지주의파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그는 여러 가지 영지주의파의 교파들과 그들의 교리 사상을 철저하게 연구한 다음 그 연구 결과를 사도들의 가르침과 성서 텍스트를 대조시켰다.
주요 저서인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과 「사도적 가르침의 증명」(Demonstratio praedicationis apostolicae) 등이 그러한 과정에서 비롯됐는데 그는 특히 영지주의의 극단적 이원론에 대해 「하느님도 한분, 그리스도도 한분, 사람도 하나, 교회도 하나, 신앙도 하나」라는 「단일성」을 천명했다.
영지주의자들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 이땅에 오신다는 것은 하느님 속성에 맞지 않는 것이므로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고 견딜수도 없는 표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레네오는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 오신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점을 설파하면서 『영지주의적인 어떤 이론도 거부하고 그리스도가 참으로 인간이 되어 오신 것이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이단 논박」은 영지주의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됨과 동시에 이단 논박에 관련된 후대 교회 저술가들에게 기초 자료가 됐으며 또한 그의 저서들은 라틴어와 아르메니아어로 번역돼 광범위하게 사용됨으로써 점차 영지주의파의 영향력을 줄여 가게 되었다.
이레네오가 보인 신학 사상을 몇가지 살펴보면, 우선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렴이론」을 통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모습이 아담의 범죄로 인해 손상되었는데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를 복원시키시며 더 나아가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수렴되고 그분을 머리로 하여 완성된다』고 밝혔다.
이러한 수렴이론은 그리스도론 뿐만 아니라 그의 신학 전반을 좌우하는 중요한 개념이라 할 수 있으며 마리아론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레네오는 유스티노가 마리아를 둘째 하와로 소개한 것을 발전시켜 『하와는 불순종으로 죄와 죽음을 잉태하였지만 하와인 마리아는 순종하였기 때문에 동정성을 간직한 채 하느님 말씀을 잉태함으로써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하와를 해방시켰다』는 사상을 폈다.
이레네오는 또한 유아세례에 대해 언급한 첫 교부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는 『인간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며 따라서 어린아이도 모두 세례를 받아야 구원된다』고 설파했던 것이다.
희랍어로 「평화」란 뜻인 이레네오의 축일은 6월 28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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