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발전에 있어서 수도자들이 맡았던 몫들이 지대하였음에도 삼천년기를 향하고 있는 작금의 변화된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 느껴지는 남녀 수도자들의 정체성 혹은 위상은 「상당히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서울대교구가 시노드에 앞서 실시한 의견조사에서도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인격적 미성숙에서 오는 인간 관계의 부조화와 신원의식과 정체성 미흡을 수도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또 신자들은 「권위의식」을 지적했다.
『한 수도회가 자신들의 카리스마를 살리려는 모습보다는 이것저것 여러 분야에 손을 뻗어 욕심을 내는 모습을 보여 그 수도회만의 고유함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수도회에서 강남의 잘사는 본당에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게 된다』 『본당내 수도자들은 증거하는 자들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본당 사목자와 같은 역할과 활동을 하려고 한다』(서울 시노드 「수도자」 부분 토론마당 결과 보고서 중)
생활·신분·사도직
정체성과 신원의식의 부족은 수도자들 스스로도 체감하는 부분이다.
수도자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다시 생각해야할 부분」으로 「수도자의 자기 쇄신 및 정체성 확립」(조사 대상자의 37.6%)을 지적하고 있으며(서울대교구 시노드 준비위원회 「전 신자 대상 의견수렴 결과 보고서」)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가 이후 1999년 실시한 실태 조사에서도 86.8%가 『수도자들이 지금보다 더욱 관상적이고 영적인 생활양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응답, 신원 의식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커다란 화두임을 짐작케 하고 있다.
수도자들이 정체감과 신원의 위기감을 느끼는 배경에는 수도회나 수도자 자신의 성화 부족만 탓할 수 없는, 예를들어 70~80년대 양적 성장 시기에 보조를 맞춰야 했던 시대 환경적인 요소가 자리잡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이 미처 토착화 되지 못한 문화 속에서 자라난 성소자들이 수도자로서 거듭날 수 있는 여건을 적절히 제공받지 못했고 특히 한국의 여성수도자들은 유교 문화 안에서 여성의 역할을 남자들의 내조자로 밖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전통적인 어머니 역할」을 일방적으로 요구받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지금껏 200주년 사목회의 수도자 의안이 작성되던 20년 전 당시에도 수도자들의 신원의식 불확실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대한 수도자 및 수도회들의 관심과 노력을 촉구했다는 면에서는 수도자의 신원과 봉헌생활의 고유성을 드러내고 지키려는 노력이 더 가속화됐어야 했다는 반성의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한 정체성 및 신원의식의 부족은 사도직으로도 연결되고 있는 양상이다. 1999년 한국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조사에 따를 때 수도자 자신들이 수도자들 문제점으로 「봉사정신이 부족하고 특별대우를 받으려는 모습이 보이는 반면, 가난한 자와 하나가 되려는 정신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서구 교회와 비교할 때 수도자들의 본당 사도직 활동은 한국 교회가 지닌 특이한 현실로 꼽혀질 정도로 한국에서는 대다수 교회 구성원들이 본당에 수도자가 파견되는 것을 전통적으로 당연시하는 경향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본당 수도자들에게서 기대되는 것은 「말과 행동에서 기도하는 자, 증거하는 자로서의 역할」이다. 그러나 평신도들 혹은 성직자들은 『본당안에서 만나는 수도자들한테서는 이런 것들을 느끼지 못하며 여러 여건이 부족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많은 본당 소임을 맡은 수도자들 가운데는 세속화의 경향이 드러나고 수도자라기 보다는 한 조직내의 중간 관리자로 자처하며 본당 일을 처리하려는 모습도 본다』고 밝히고 있다.
수도자들의 신원의식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방안은 『영성적 존재로서 예언자적인 역할을 보이며 복음적 가치를 통해 세속적인 흐름들과 투쟁하는 모습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 청빈 생활의 문제가 수도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관건이라는 점에서 수도자 본연의 가난함을 되찾고 구체적인 청빈을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수도자들도 1992년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가 조사한 설문에서 『오늘날 수도자들이 세속화되어 간다고 말할 때 어떤면에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34%에 해당하는 이들이 「사치, 고급화 현상, 편리 추구」라는 대답을 했다. 또 『귀 본당 수녀들의 가난서원 생활을 어떻게 보십니까』라는 문의에 「중(中) 이상의 생활이라는 의견이 88.9% 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당 사도직이 1/3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현실에서 수도회들의 본당 사도직에 대한 부담은 수도자도 마찬가지. 1999년 한국 여자수도회 실태 조사에서 수도회가 포기해야할 사도직의 유무에 대해서 32.7%가 수도회가 포기해야할 사도직이 있으며 그 사도직 가운데 하나가 「본당 사도직」(59.8%)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본당 수녀가 꼭 필요한가」라는 것. 그 이유는 「카리스마와 맞지 않으며」 「수도자가 할 필요가 없는 일」이고 「수도정신을 약화시킨다」 등이었다.
S수녀회 총장 수녀는 『수도자들의 본당 사도직 재고 문제는 수도자 자신들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울리고 있는 문제로써 사실상 사제들이나 평신도 교회 차원에서의 협조와 배려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수도자 자신과 수도회 차원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풀어가야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사도직과 관련해서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에서는 『먼저 참된 수도자가 되는 것이며 훌륭한 수도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결국 수도자들에게 있어 「수도생활과 사도직은 하나」』임을 강조하고 『본당사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대가 요청하는 사도직에로 계속 관심을 갖고 예비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수도자 및 수도회들이 의안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수도자는 효율적인 사도직을 암시해 주는 시대의 징표에 민감해야 한다」는 부분과 함께 「분단된 한국의 상황은 일치와 평화를 위한 기도와 노력을 요구하며 진정한 용서와 화해로써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길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수도회들에서 북방선교를 향한 노력을 점진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민족 화해를 목적으로한 복지 업무 등에 투신하고 있으나 좀 더 과감한 태도가 아쉽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는 면에서 그렇다.
양성
오늘날 한국 수도회들이 또 하나 당면한 문제중 하나로 지적하는 것이 「양성」이다. 현재 한국의 수도회들이 양성 문제와 관련해서 맞아들여야 하는 도전은 「성소계발의 어려움」 「집단위주의 양성과 교육내용」 「이상과 현실의 차이」 「양성 전문가 부재」 등이다. 최근들어서는 선교사 양성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 되고 있다.
수도회 관계자들은 실질적으로 서울대교구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안에서 수도자 신학원을 제외하고 수도자들을 위한 전문 양성기관이 부족하고 또 수도자 양성자를 배출하는 전문 교육기관이 없는 것이 현실임을 밝히고 있다. 여자장상연합회에서 2002년부터 양성분과를 설립한 것 등이 눈에 띌 뿐이다.
성소계발 못지않게 수도회 연륜이 100년을 넘는 현실에서 중견이상 수도자들의 계속적 양성 문제가 더욱 시급한 현실이다. 수도자들은 구체적 삶을 통해 자신의 비전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작업을 종신서원후 적어도 3년 내지는 5년이내에 가지지 못하게 될 때 심한 갈등을 겪게되고 다른 곳에서 비전을 찾거나 그것마저도 포기해버리는 무기력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교사 양성문제와 관련해서는 사목회의 의안이 『한국 교회의 성장과 발전에 보조 맞추어 해외 선교사를 양성 파견함도 하나의 과제』라고 밝힌 부분은 수도회들이 보다 면밀히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할 내용으로 보여지고 있다.
반성과 전망
사목회의 의안에서 제시된 「쇄신, 토착화, 민족 복음화」의 과제는 20년전 사목회의 개최 당시부터 강조돼 온 것이면서 현재까지 한국교회 수도회들이 삼천년기를 향한 발걸음에서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할 사명으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한순희 수녀(성심수녀회·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는 『한국 교회사안에서 「불교 수도생활」과 「유교 삶의 철학」의 영향을 고찰하면서 한국 교회안에서 복음 정신을 사는 예수님 제자로서의 삶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즉 단체 생활로써의 수도생활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예수님의 마음, 선호하심, 정서와 일치하고 그에 다다르는 제자의식이 고취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관련 한수녀는 『국제수도회도 한국에 오면 예언자적인 사명에 앞장 서기 보다는 한국 현행 종교 풍토에 순응하는 경직화되고 획일화되는 비창조적인 모습이 다분히 보인다』고 밝히고 『시대의 징표와 문화의 흐름을 읽으면서 예수의 제자로서 투신하는 적극적이고 예언자적으로 사는 용기와 신앙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요히 순응하고 안주하는 경향은 한국 교회를 부정적으로 이끄는 독소가 될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사목회의 당시 수도자 의안 담당을 맡았던 이한택 주교(주교회의 수도자 담당)는 『결과적으로 200주년 사목회의 수도자의안이 20년이 지난 지금 그 제정 의미만큼 영성생활의 질을 높이고 증거생활의 모습을 보이며 내적인 자신감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질문이 던져져야 한다』면서 『수도회들이 현대화 됐지만 세속화된 부분이 큰 만큼 사목회의 정신인 순교정신을 더욱 고취시키고 보다 더 본질적인 봉헌생활에 투신하는 한편 사회뿐 아니라 인류 봉사 생활을 질적으로 향상 시켜가는 문제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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