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성당에서는 늘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느님께서는 우리 가까이 계시다라고 가르쳐주는데, 저는 솔직히 인간이 허상의 하느님을 만든건 아닌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이 생깁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가까이 계시다면 우리는 왜 하느님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건가요?
A.마음이 불안하면 하느님이 없기를 바라거나 무조건적인 사랑만을 강조하게 되어 있습니다(예레 3, 5 참조). 그러나 지상에서의 가장 명백한 사실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가까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 갑니다』(사도 17, 28).
그런데 왜 우리는 못 느끼는가? 많은 경우 우리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며 우리의 생활이 욕심(쾌락, 돈, 명예욕)에 물들어 두려움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눈과 귀를 멀게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들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묵시 3, 20). 우리가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탓에 있지 하느님 탓에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문을 부수시고 들어오시지는 않습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으려 했던가.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마태 23, 37)
사람들은 구원되기를 원하지만 죄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경제적 불안정에서, 질병에서의 구원을 원합니다.
또한 우리는 구원되기를 원하지만 너무 큰 대가를 치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항상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 부자는 그래서 예수님을 떠났습니다(루가 18, 23 참조). 또한 우리는 하느님의 방식이 아니라 내 방식으로 구원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알아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하느님을 뵙는 믿음은 항상 포기가 전제됩니다. 성녀 대 데레사는 말합니다. 『나는 하느님을 뵙기 위해서 떠났습니다』(자서전 1, 4 참조). 이 정신으로 아브라함과 성모님을 바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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