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경험-鏡篇
제가 소임하고 있는 본당은 농촌 본당입니다. 외적인 모든 여건들이 넉넉하지 못한 본당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저는 참외 농사라는 외도(?)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특별한 선택은 많은 사연들을 생산해 내는 뿌리이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인 「첫경험」을 겪게 된 일입니다.
지난 4월 5일은 식목일인 동시에 한식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제 하우스 앞에서 「방티장사」(물건을 바구니에 담에 길에서 파는 것)를 했습니다. 참외가 생물(生物)이라서 제때 따내지 못하면 공판장에 낮은 가격에 파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제 하우스는 공원 묘지 가는 입구에 있었기 때문에 한식날 장사하면 잘 될 것 같아서 그런 맘을 먹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자신감도 없었고, 부끄럽기만 했었습니다. 너무 부끄러워서 처음 팔 때는 앞에 앉아 있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험적으로 참외 한 봉다리(봉지)를 하우스 밖에 내 놓고만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이 보면 참외 따는 것처럼 보이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파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맘으로 하우스 안에서 오 분 정도 얼쩡거리고 있으니까-사실 그날 비닐 하우스는 무척 더웠습니다-지나가던 차가 서서 『참외 파느냐』고 묻는 거였습니다. 속으로 좋으면서도 겉으로는 참외 따는데 귀찮다는 듯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와요』라고 퉁기었습니다. 『얼마 하느냐』고 묻기에 『한 봉다리 삼 만원』이라고 하니까 한번쯤 갸우뚱하는 거였습니다.
그때 속으로 「너무 세게 불렀다」하는 순간적인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이거 작아 보여서 그렇지 거의 한 상자구마. 또 농약도 거의 안친 저농약 참외구마』라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뗐습니다. 그때서야 사가는 거였습니다. 그 한번이 지난 후에 눈에 불을 켜고 참외를 따기 시작했습니다. 한 봉다리씩, 한 봉다리씩….
하지만 처음처럼 쉽게 팔리지는 않았습니다. 차를 세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비싸다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꾀를 내서 열 개 만원이라고 하니까 또 사가는 거였습니다. 그때부터는 만 원 짜리 한 봉다리, 이 만원 짜리 한 봉다리, 삼 만원 짜리 한 봉다리씩을 내다 놓고 쭈그리고 앉아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시간을 팔면서 칠 만원을 벌었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주머니에서 얼마나 쪼물락 거렸는지 모릅니다. 바깥에서 헤아리기가 뭐해서 하우스 안에 들어가 히죽거리며 몇 번을 헤아렸는지, 콩닥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헤아리고 또 헤아리고, 그러면서 히죽대고 웃고….
나중에 교우 한 분이 제가 참외 파는 것을 지나가다 보시고는 시어머니에게 연락을 드렸는가 봅니다. 어쩔수 없이 급하게 달려온 교우 할머니와 같이 쭈그리고 앉아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팔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둘이서 팔고 있는데 부제 때 본당 신부님을 하셨던 선배 신부님이 전화가 왔었습니다. 『어디서 무얼 하느냐』고 그래서 『참외밭에 있다』고 하니까 지금 너희 성당에 와있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곤 참외밭에 오시겠다는 거였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저는 다급하게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할매 전(廛) 접어!, 할매 전 접어!』
사실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은 맘이 들었던 것입니다. 동기신부 같으면 그래도 같은 식구라서 괜찮지만 선배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게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이상했던지 교우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래지는 거였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는 『신부님 괜찮십니더, 팔아도 괜찮아요』라고 버티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실강이를 하는데 선배 신부님이 나타나는 거였습니다. 저는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구요….
선배 신부님은 차에서 내리시며 웃고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둘러보시고 원두막에선 참외도 깎아 드시고, 가실 땐 교우 할머니에게 무언가(?) 쥐어 주셨습니다. 그날 저는 삼십 사만 오 천원을 벌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서 저는 참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첫째로 「자신감」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제 평생 처음 하는 장사였기 때문에 앞서 말했듯이 억시로(굉장히)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더군다나 공원 성묘 갔다오는 「전 본당 교우들을 만나면 우야노」라는 생각이 더욱 부끄럽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한번 팔아보니까 그 부끄러움이 자신감으로 채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우분들 하고는 무엇을 하든지 구경꾼처럼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또 이렇게 자신감을 갖고 있다면 고생하더라도 「참 보람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비록 제가 번 돈이 우리 교우분들이 필요로 하는 돈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모두의 꿈이 이루어졌을 땐 작은 것일 수도 있지만 정직했던 돈이었고, 보람있는 돈이었으며, 고생했던 돈이었다는 자부심이기도 했습니다.
둘째로 사랑이라는 겁니다. 비닐 봉다리 내놓고 쭈그리고 앉아서 지나가는 차들 멀끔하게 쳐다보면 참 초라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동물원에 갇혀 구경 당하는 동물들처럼 말입니다. 차가 처음 보이면 「사줄랑가」, 차가 속도를 내면 「어-어 그냥 가네」, 지나가고 나면 「에-이」….
그때마다 속으로 되새기는 것이 「내가 와이카노(察)?」라는 거였습니다. 분명 완고한 분들이 보면 용납하지 못할 신부로서의 처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키우는 참외도 사랑스럽고, 우리 본당 교우들도 사랑하고, 예수님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 어느 하나라도 사랑하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끄러워하는 천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말입니다. 하지만 「사랑」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答).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캄캄한 밤 감실 앞에 앉아 있으려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물먹은 감실 등불은 꽤 크게 보였습니다. 그 하루가 뿌듯해서인지, 제 자신이 처량해서인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던 예수님의 마음(聖心)을 그때서야 이해해서인지….
사목은 언제하나
동료 신부님들에게 『참외 농사를 짓는다』라고 하면 똑같이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럼 사목은 언제하노?』
그 말을 보다듬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사목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들 은 대부분 도시에서 쓰던 기법을 무리하게 농촌에 적용시키지 않았던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은 농촌에 와서 「할 일이 없다」거나 「쉬는 것」의 이야기들을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들은 1년은 버틸만한데 2년은 좀 힘든 곳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지금도 많은 신부님들이 농촌사목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러한 현상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도시에서 생각하고 있는 「사목이란?」 규정, 혹은 「사목적 시스템」은 적어도 농촌에서는 많은 한계점을 드러낸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비록 참외 농사를 짓는다는 지엽적인 부분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함께」하는 사제와 공동체 혹은 지역 사회에서의 공감대는 농촌 사목의 한계를 희석시키는 대안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씨뿌릴 때부터 공판장에 가기까지 함께 했던 시간들은 농촌 삶의 애환을 이해하는 출발점이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신부와 신자라는 분리적인 관계가 아니라 신자 속의 신부로서 가족처럼 받아들여지는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한편 이러한 삶의 궤적들은 우리의 농촌을 경제적인 논리로 도려낼 수 없다는 운명을 이해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논리로 농촌을 포기한다면 우리 모두는 가까운 시간에 더 큰 경제적 손실과 박탈감에 젖는 농민의 고통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농민의 입장에서 농사를 포기하고 그 다음 해야 할 것이 없을 때 그것은 파멸을 의미합니다. 정부이건 교회이건 이런 문제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쉽게 농업은 포기해야할 산업이란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식량 주권이 확보되지 않는 거래는 목숨을 담보로 한 거래란 점을 지적하면서 모든 분들에게 농촌 사랑에 대한 당부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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