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삶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그의 10주기를 맞아 쓴 글과 대담을 모아 펴낸 책의 제목이다.
사제생활 10년을 맞은 나도 이 책의 제목처럼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식인도, 재력가도, 명망가도 아닌 농민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일과 삶, 그리고 신앙을 보노라면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라고 절로 고백을 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볼 때 마다 애써 십자가를 피해서 달아나는 내가 부끄러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뒤주골 방지가 할매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도광이다. 한 시간 이상이 걸리는 조과와 만과는 물론이고 하루에 묵주기도를 세 꾸러미는 해야 직성이 풀리신다.
올해 여든 일곱인 대나무 안나 할매는 성당 쪽을 향해 매일 『아이구 하느님요. 나는 언제나 성당에 나가 니껴』하고 주문 외우듯 기도를 하신다.
느리바우 안나씨는 밤마다 방언 기도를 한다. 언젠가 선물받은 감자를 나누어 주려고 외딴 안나씨 집을 찾아갔을 때 캄캄한 밤에 촛불 하나 달랑 밝히고 방언으로 심령 기도를 하는데 신부인 나도 간이 다 떨어지는 줄 알았다.
몸에 배인 기도로 하루를 보내시는 방지가 할매나, 아픈 몸 때문에 갈 수 없는 성당을 향해 끊임없이 내뱉는 안나 할매의 넋두리, 그리고 어두운 밤하늘 가득히 퍼져가는 하느님을 향한 안나씨의 방언은 기도를 밥 먹듯이 해야 할 나를 일깨우고 부끄럽게 만든다.
검무산 치릴로 회장님은 올해로 예순 여섯인데 15년이 넘게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치릴로 회장님은 벌써 한 달째 논을 매며 풀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럼에도 주일전례를 거르는 법이 없다.
지난여름 농촌공소 생태농활을 내려온 서울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 학생들을 몇 명 보내겠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양보했던 치릴로 회장님은 천상 나눔과 섬김이 몸에 배인 참 신앙인이다.
치릴로 회장님은 겨우 논농사 세마지기를 지으며 끙끙대던 나를 참 부끄럽게 만든다. 오직 생명을 살리는 것이 땅과 하늘을 내신 하느님께 바쳐야 할 신앙 행위라는 확신을 가진 치릴로 회장님은 내 주위에서 끊임없이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또 다른 예수이다.
많이 배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높은 명망을 누리지도 못하지만 신앙과 생활이 삶속에 자연스럽게 배인 농민들 앞에서 나는 새삼 부끄럽다. 특별히 잘난 것도 없고, 있는 것조차도 드러내려 하지 않는, 그저 제 갈 길을 겸손하게 걸어가는 그들이 정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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