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도 사고나면 수시로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신자들이 교회에 기대할 수 있는 애프터서비스는 무엇인가』
평신도 의안이 담아내고 있는 고민과 모색의 밑그림을 현재적 언어로 표현하면 이런 말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밑그림을 바탕으로 세우기 시작했던 평신도 의안의 결과물은 뼈대만 올려진 체 비바람에 삭아 내리는 건축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평신도 의안의 초안 입안에서부터 작성에까지 깊이 관여했던 한 신자는 그 때의 고민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래서 사목회의 의안 중 가장 많은 부분이 할애된 평신도 의안은 그 수고에 비해 거둔 과실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역사적 전개
「순례하는 교회」로서의 현실 교회가 놓인 지형과 위치를 고려하는 가운데 20년 전 신자들의 고민을 담아낸 평신도 의안은 사목회의를 전후해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각 교구 차원에서 진행된 시노드다. 시노드라는 용어가 의미하듯 사목회의를 전후해 열린 교구 시노드들은 모든 신자들이 「함께 하는 여정」을 표방했다. 그러나 숱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들에게 「함께」라는 의미는 체감하기 힘든 영역으로 남아왔다. 그것은 20년 전 평신도 의안에서 언급된 「미래의 평신도」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당시의 문제의식이 지금도 문제의식으로만 남아 있을 뿐 교회 내에 적절히 수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평신도 의안이 담고 있던 정신이 이후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이어져 왔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시대의 징표를 새롭게 해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교회의 수용 노력과 한계
사목회의를 전후해 한국교회는 교회를 둘러싼 복잡다단한 현실이 가져다주는 도전과 이에 대한 응전의 과정에서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다.
사목회의 폐막 후 평신도 의안이 담아내고자 했던 정신과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문제의식 등은 이후 「한국천주교사목지침서」에 부분적으로 담겼고, 90년대 본격화된 교구 시노드들에서도 논의됐다. 1997년 대구를 시작으로 인천 수원 서울에서 잇따라 개최된 교구 시노드들은 한국교회에서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평신도들의 정체성과 역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대구대교구 시노드(97년 11월 30일∼99년 10월 10일)
10여년의 준비를 거쳐 1997년 발표된 대구대교구의 시노드 의안집에는 성직자 수도자 등 교회의 다른 지체들과는 달리 평신도에 대한 부분을 별도의 제목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수도자 의안에 이어지는 ▲자녀들의 신앙 교육(주일학교) ▲예비신자 ▲본당상 ▲사회복지 ▲가정 등 5개 의안의 상당 부분을 평신도의 신원과 역할에 할애하고 있다. 특히 「본당상」에서 본당이 단지 『신자들 개개인의 집합체가 아니고, 사랑의 유대를 갖고 일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는 인식은 교회를 일치와 나눔의 공동체로 본 사목회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어 「가정」 의안에서 『21세기 가정은 지금보다도 가정의 개인화, 독신 가구와 혼전 동거의 증가, 생명공학산업과 매스미디어의 팽창으로 생명존중과 인간 존엄의 상실, 이혼 증가, 가족의 기능 약화가 예측된다』고 전망한 부분은 오늘날에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또한 시노드 폐막과 함께 발표된 총69항에 이르는 「교구장 교서」는 5번째 의안인 「본당상」을 통해 친교와 일치를 일관되게 강조하면서 41∼49항에 걸쳐 평신도들이 참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장으로 사목평의회를 비롯해 본당 재무평의회, 전례, 반모임 등을 구체적으로 꼽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인천교구 시노드(1999년 6월 6일∼2000년 11월 19일)
시노드 폐막과 함께 반포된 최종문서에서 「교회의 주역」이라는 부제를 달고 다뤄지고 있는 「평신도」 영역은 평신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전제로 교구의 현실을 꼼꼼히 분석하고 있다.
이 문서는 『평신도는 극단적인 이중성, 즉 사회적 생존을 위한 전략적 태도와 복음적 요구를 조화시켜야만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12항)며 평신도가 항상 부닥치는 현실적 어려움을 지적하고 있다. 이어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하기보다는 자신의 구원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개인주의적 신앙 의식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지나친 신비적 신심주의에 빠지는 현상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는 평신도 신앙생활에 대한 평가는 오늘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시노드는 16항에서 평신도 지도자의 양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어진 제3장 「실천 요강·개선 제안」은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측면에서의 접근보다는 평신도들의 관심과 노력, 투신과 헌신을 강조하는 등 의식적인 면에 과도하게 무게가 실려있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평신도 사도직의 활성화를 위해 유능한 평신도 지도자를 육성한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평신도 지도자 양성을 위한 체계 마련 ▲평신도 인적 자원 관리에 대한 교회의 인식 전환 등을 제시한 부분은 현재도 유효한 제안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이런 고민과 모색이 시노드 이듬해 신자들의 재복음화 작업과 관련, 시대에 부응하는 사목정책과 방안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하기 위해 한국교회 사상 첫 교구 직속 사목연구소인 「인천교구 사목연구소(현 미래사목연구소)」로 가시화된 것은 시노드의 성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원교구 시노두스(1999년 7월 17일∼2000년 10월 11일)
수원 시노두스는 교회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접근한 타 교구 시노드와 달리 「교회 기초 공동체 활성화」와 「자율적인 젊은이 신앙생활」 등 2개 의안만으로 개최됐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는 구역·반 공동체를 신앙의 못자리이자 사회복음화의 장으로 마련하는 일과 젊은이 신앙생활에서의 교회의 역할에 관한 논의가 새로운 복음화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진단에서였다. 이 두 의안 모두 변화된 환경 내에서 평신도가 복음화의 씨앗으로 올바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깔고 있다고 하겠다.
폐막미사에서 반포된 최종문헌은 『구역·반 공동체는 「작은 교회」』이자 『함께 하는 교회』라고 천명하고 『평신도들이 교회의 일에 적극 참여하고 함께 하는 교회가 구역·반 공동체』라고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구역·반 공동체의 필요성은 「교회 구조의 1차적인 세포이고, 복음화의 초점이며, 현실적으로 인간다운 성장과 원초적인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대교구 시노드(2003년 1월 26일∼9월 28일)
서울대교구 시노드는 준비 단계서부터 평신도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교구장 정진석 대주교가 폐막과 함께 반포한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의 평신도 부분은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을 다룬 제1부를 시작으로 가정, 여성, 노인 등 4부 57항으로 이뤄져 있다.
교서는 특별히 「참여적 교회상 구현」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평신도의 고유한 활동 분야를 사목회의와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찾고 있다(8∼10항). 또 정체성에 대한 교육을 바탕으로 특별히 사회교리와 영성의 심화가 긴요하다고 지적하고 「평신도 센터」를 설립해 다양한 평신도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평신도들의 전인적인 교육과 지속적인 양성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의지를 밝히고 있다.
교서는 특히 『복음화의 미래는 가정에 달려 있다』(25항)는 인식 아래 가정을 위한 통합적 사목을 강조하고 ▲가정 사도직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 ▲가정 교리서 편찬 ▲가정 복음화 교육 ▲아픔을 겪는 가정을 위한 사목적 배려 ▲가정기도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 문제에 대한 긴박한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소공동체 운동
사목회의 후 교회 안에서는 의안의 정신을 살려나가려는 다양한 노력이 이뤄졌다. 이 가운데 『교회 활력의 표지이고 신자 양성과 복음화의 도구이며…복음화와 기초적 복음 선포의 도구』(교회의 선교사명 51항)로 표현되는 기초공동체(소공동체) 운동은 사목회의 의안이 천명한 사목 목표이자 방법을 수용한 흐름으로 주목받아 왔다.
1990년 초 한국교회에 처음으로 소공동체 운동이 소개된 후 92년 서울대교구가 최초로 소공동체 운동을 공식화하고 이어 93년에 대구대교구가 소공동체 운동을 시작하자 소공동체 운동은 새로운 진로를 확보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2001년 6월 25일 충북 음성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에서 최초로 열린 「소공동체 전국 모임」은 소공동체 운동의 새로운 원년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참가자들은 소공동체가 복음화, 신앙쇄신 등 한국교회의 당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공감대를 이뤄냈다.
따라서 소공동체 운동이 교회가 끊임없는 친교와 쇄신의 공동체로서 참 모습을 찾기 위한 운동이며 정체성을 회복하자는 운동이라는 인식을 확립하고 각 교구별 실정에 맞는 한국적인 소공동체 모델 개발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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