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누나. 일루와 봐. 여기 달팽이 있어』 『야, 잡으면 안돼』
지루한 장마가 한숨을 돌리고 모처럼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던 7월 17일 경기도 의정부시 송산동성당(주임=지정태 신부) 앞마당. 박유나(안젤라·12)-근효(프란치스코·9) 남매는 뭐가 그리 좋은지 성당 마당을 놀이터인양 뛰어 다니기 바쁘다.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드는 아이들에게 『그래, 엄마 여기 있어』하고 대답하지만, 엄마 이혜란(헬레나·37·서울대교구 송산동본당)씨는 생사가 걸려 있는 큰 수술을 앞둔 아이들이 안타까워 더 말을 잇지 못한다.
세살 터울의 개구쟁이 두 남매는 희귀병인 「모야모야병」을 똑같이 앓고 있다. 주로 10세 이하 어린이에게 발생하는 이 병은 대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내경동맥이 서서히 좁아지거나 막히게 되는 진행성 혈관질환의 일종. 뇌경색과 뇌출혈을 일으켜 흔히 중풍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가난하지만 웃음이 끊이질 않았던 유나네에 어둠의 그림자가 찾아온 것은 지난해 8월. 주일학교 교리를 듣던 근효가 갑자기 뒤로 쓰러지며 마비 증세를 보이면서부터다. 이후 비슷한 일이 잦았고 근효의 마비 증세는 전신마비로까지 이어졌으며, 구토와 언어장애를 동반했다.
병원을 숱하게 돌아다닌 결과 얻은 병명은 「모야모야병 3기」. 눈앞이 캄캄해졌으나 그것도 잠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지난 3월부터는 유나에게도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천만명 중에 한 명이 걸릴 확률이라는데…. 왜 우리 아이 둘 모두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이씨는 가슴을 치며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 짐승의 어미처럼 울부짖기도 여러 번.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다.
다행히도 희망은 보인다. 앞으로 세 차례의 수술 후 결과를 살펴봐야 알겠지만, 수술만 성공적으로 끝나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큰 무리는 없단다. 그러나 수술을 앞두고 유나네 가족은 슬픔에 빠져 있다.
가진 재산이라곤 20평 규모의 임대 아파트가 전부. 두 아이의 수술비만 2000여 만원이 훌쩍 넘지만 어느 한 곳 도움을 구할 곳도 없어 막막할 따름이다. 아빠 박태완(요아킴·43)씨가 가스 배달을 하며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수술비와 입원비, 치료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수술 날짜는 다가오는데 부모로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현실이 원망스러워요. 많이 고통스러울 텐데 의연하게 참아내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7월 22일 수술을 앞두고 어머니 이씨는 오랜만에 일기장을 폈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 굵은 빗방울이 창문을 거세게 두드린다. 아빠 엄마가 커다란 우산이 되어서 너희에게 내리는 차가운 빗줄기를 피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너무나 미안하구나. 사랑하는 안젤라, 프란치스코야. 다 잘 될 거야. 우리 하늘에 계신 그분께 같이 기도하자. 너희들을 많이 사랑하는 엄마가…』
※도움주실 분=우리은행 702-04-107881 (주)가톨릭신문사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