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주년 사목회의가 열린 후 20년이 지난 지금 4년여에 걸친 준비와 수많은 모색을 이뤄낸 사목회의는 일회성 행사로 그쳐버렸고 회의의 결과물들은 사장되고 있다는 느낌이 적지 않다. 사목회의가 「신앙의 원리 원칙에 충실하면서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목표와 방법을 검토하여 한국교회의 참된 성숙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의안의 목적)을 첫째 목표로 삼았고, 그 열매도 「한국 천주교회가 내놓은 최초의 공식 의안」이었음에도 계승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단절의 이유를 사목회의의 성과들을 계승할 수 없도록 하는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고 있다.
평신도의 현실과 위상
사목회의를 뜨겁게 달구었던 열의, 그 뜨거웠던 용광로에서 길어 올린 「친교와 쇄신」이라는 결정물은 20년이 지난 지금 차디차게 식어 있는 모습이다. 용광로에 용해되었던 수많은 모색과 고민들은 마땅한 거푸집을 찾지 못해 그대로 굳어버린 형상이다.
이는 결국 신자들의 전망을 통해 사목회의가 도출해낸 성과를 수용할 수 있는 구조의 변화, 기존 관행을 과감히 벗어버리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이를 감당할 인력 양성과 같은 것들이 제도적 틀로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평신도의 지위가 과거보다 향상되었다고는 하나 평신도의 위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저변화됐다고는 보기 힘들다. 사목회의의 주요 기조 가운데 하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교회구성원 모두의 평등성을 바탕으로 하느님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한 공동체로서 적절한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뿌리깊은 문제로 지적되어온 성직자중심주의는 사목회의가 시도한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여전히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평신도가 실제 사목과 선교의 동반자로 참여하는 범위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또한 평신도만의 고유한 특징인 「세속적 성격」에 대한 이해 부족은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경직되고 잘못된 결과를 잉태하게 하고 이는 다시 교회 발전의 지체로 나타났다. 「세속성」으로 인해 오히려 평신도는 세상과 교회에 대해 특별한 위치에 서게 되며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방법으로 현세 질서에 그리스도 정신을 불어넣는(평신도 그리스도인 36항) 존재임에도 오히려 이로 인해 성직자나 수도자들보다 열등한 존재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현실은 평신도의 위상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로 드러나기도 한다.
서울대교구 시노드 준비위원회가 2002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평신도의 61.3%가 교회 쇄신을 위해 가장 먼저 변해야 할 대상으로 평신도 자신을 지적하고 있다. 또 20세 이상 신자 10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신앙생활 실태 조사에서는 대부분(95.9%)이 평신도가 세상을 성화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견해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생각과 실천이 괴리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사목회의는 교회가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고 그 과정에 교회의 각 구성원들이 나름대로 제 자리에서 스스로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생활현장 중심의 교회를 표방한 공의회나 사목회의 정신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인해 과거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교회는 근래 들어 민주화운동, 민족화해운동 등 사회 속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드러낼 사회사목에 있어 시대에 뒤쳐져 따라가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이는 교회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어져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는 모습으로 가시화되기도 한다.
사회생활에서 신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하는 태도가 적지 않아 신자와 비신자의 차이가 없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없지 않다.
지난 97년 가톨릭신문이 실시한 「가톨릭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 조사에 따르면 교회를 떠나고 싶은 이유에 대해 가장 많은 31.7%의 응답자가 「신자들의 생활방식에 대한 실망」이라고 답해 평신도들의 이중적인 신앙태도가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냈다.
이는 최근 연구 결과에서도 나타나 한국 근현대 가톨릭연구단이 올 4월 발표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천주교 내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신자의 사회윤리의식 부족」(15.9%)이 두 번째로 꼽혔다. 이는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을 별개로 보고 있는 평신도들의 의식의 괴리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목회의를 떠받친 축 가운데 하나는 교회 각 지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보장해 역동적인 교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사목회의는 모든 교회의 지체, 특히 평신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쏟았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의사결정 구조는 소수에 집중되어 있는 실정이다. 오늘에 와서도 이런 구조에 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의식은 평신도들의 발걸음을 교회 외부로 돌리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사목회의와 서울대교구 시노드에 참여했던 서강대 김어상 교수는 『사목자와 평신도간의 의사소통의 부족으로 마치 기관차와 객차가 따로 떨어져 달리는 듯한 모습이 교회 내에 적지 않다』며 참여와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고 『친교의 교회상을 확립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과 제도 마련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이 있을 때 스스로 교회를 찾게 된다. 사목회의 당시 교회 대표자들의 고민도 여기에 집중됐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교회가 세상에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꿔나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든 외적 요인과 환경은 더욱 나빠져 그릇된 개인주의적 신심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사목적 사각지대는 늘어만 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사목회의가 일관되게 강조한 평신도 인재 양성을 소홀히 한 결과이기도 하다. 세속을 그리스도화 해나가는 최일선에 선 평신도들이 풍부한 영성에 젖어 지내지 않으면 세상과의 대화 속에서 역량을 발휘하거나 자신감을 갖기 힘든 것은 당연한 결과다.
또한 교회 안팎에 존재하는 다양한 평신도의 역량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사회의 각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평신도 전문가는 물론이고 가톨릭교리신학원 등을 통해 배출된 평신도도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아울러 일반 신자들이 접근하기에는 쉽지 않은 교육체계도 평신도들을 둘러싼 영적 풍토를 단조롭고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전망과 사목적 과제
한국교회, 특별히 평신도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변화를 수용하기도 벅찼던 사목회의가 열렸던 1980년대 초반과도 커다란 차이가 있는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정보사회로 대변되는 현대사회는 인간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과거보다 더 극심한 소외현상과 개인주의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 영향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개인주의적인 신앙 태도와 계층간 이기주의의 심화 등의 문제는 날로 증폭될 전망이다.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국제화는 자칫 토착화 도정에 있는 교회가 뿌리내리기도 전에 사목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어 놓을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거시적인 안목을 확보하지 못하고 기존의 선교관과 사목방법을 유지하려 한다면 사목 여건은 악화될 게 분명하다.
이런 분석은 이상 징후로 가시화되고 있다. 40년만의 최저를 기록한 2003년도의 신자 증가율 1.9%를 필두로 냉담자 비율 35.7%, 주일미사 참례율 26.9%, 40세 미만 전 연령층 교세의 마이너스 성장 등의 통계치는 미래교회에 몰려올 먹구름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신영성」의 이름으로 반그리스도교적인 대체종교(alternative religion)와 보이지 않는 종교(invisible religion)들이 교회를 잠식해들어 오고 있다. 나아가 타종교의 가르침과 수행에 대한 동경이 위험수위에까지 차오르면서 지식인들은 교회를 속속 떠나고, 젊은이들을 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일반화되고 있다.
교회 활동의 상당 부분이 평신도에 의해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수되고 있는 성직자중심의 교회 구조로는 변화의 물결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힘들다. 근래 들어 강조되고 있는 가정중심의 교회, 소외된 이웃에 대한 접근 등이 유기적으로 이뤄지려면 평신도, 그 가운데 여성이 중심축을 형성하는 교회로 변모하는데 대한 적응과 이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차동엽 신부(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는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가 일방향적으로 정해져 있는 지금까지의 교회 구조로는 평신도가 수동적이고 유아적이며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공동책임과 공동참여를 지향하는 복음화 구조를 통해 평신도들의 자발적 참여와 혁신적인 신자 재복음화를 추구할 때 현재의 위기 상황을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신도 의안에서 언급된 「미래의 평신도」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문제의식이 지금도 문제의식으로만 남아 있다. 이는 의안이 담고 있는 정신이 교회 안에서 적절히 제도로 수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사목회의의 제안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의안의 내용들을 오늘에 수용하면서 변화된 환경변화에 따르는 새로운 과제들을 더 보완해 한국교회 쇄신의 기초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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