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여 차례에 걸쳐 지구화, 정보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다원문화 등 4대 메가트렌드의 관점을 주유하면서 「한국 가톨리시즘의 현재」를 조명해 봤다. 그 노정에서 다원문화의 지대에 이르러 지리(支離)하다 할 만큼 오래 체류하였다. 더 살펴봐야 할 영역들이 있지만 다른 주제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이쯤에서 다음 행선지로 이동해야 할 듯 하다.
약속대로라면 이어지는 여정은 「한국 가톨리시즘의 부활을 위한 길」, 「한국천주교회 선조들의 위대한 신앙」, 「종교다원주의 시대의 가톨릭 신앙」, 「가톨릭교회의 세계관(신관, 우주관, 인간관)」 순(順)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앞의 두 영역에 앞서 뒤의 두 영역 언저리를 먼저 배회한 꼴이 되었다. 하여 내친김에 일정을 수정하여 우선 나중의 두 가지를 「다원주의 시대의 가톨릭 신앙」으로 묶어 일별하고 나서, 예정된 나머지 차례를 따르고자 한다.
방황하는 양떼, 방관하는 목자
다원주의 시대에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벤쳐기업은 신흥영성운동(뉴에이지)이다. 나중에 별도로 용어풀이가 있을 터이지만 신흥영성운동(뉴에이지)은 일찍이 칼 막스가 『자본주의가 갈 데까지 가면, 팔아먹을 수 없는 것까지 팔아먹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던 대로 자본주의 말기에 나타난 무차별 상업주의의 소산이라고도 볼 수 있다. 21세기 상업주의는 마침내 인간의 종교심을 수요로 삼아 새로운 구원재(救援財)를 개발·공급하면서 무한한 시장을 형성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른바, 「신흥영성 시장」에는 별별 상품들이 즐비하다. 평화, 행복, 성공, 건강, (인생)상담, 문화, 웰빙 등등 품목별로 오만가지 제품들이 출시되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문제는 점점 많은 기성종교의 신앙인들이 종교적인 욕구를 더 이상 자신이 속해 있는 종교에서 충족시키지 않고, 이들 「쉽고」 「재미있고」 「편리한」 종교적 대체물(religious alternative) 또는 보이지 않는 종교(invisible religion)들로 대리충족시킨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신흥영성운동(뉴에이지)의 최대 피해자는 가톨릭교회이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노길명 교수는 가톨릭 언론매체를 통하여 신흥영성운동의 대표적 상품에 속하는 기 수련 참여 실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개진한다.
『이러한 기 수련에 몰입하는 사람들 중에는 개신교보다 가톨릭 신자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가톨릭이 체계화된 교리와 전례 중심의 종교이다 보니 영적인 욕구와 종교체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사실 부족한 점이 많지요.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이를 기 수련을 통해 보상받으려고 하는 겁니다』
이 사실은 필자도 다양한 사목현장의 교우들을 만나면서 거의 매일 확인하고 있는 내용이다. 대체로 개신교 신자들은 신앙정체성이 분명해서 덜 휘둘린다. 또 부흥회, 사경회, 수양회, 철야기도 등 영적 메뉴가 다양해서 그리 한 눈 팔 겨를도 없다.
대조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은 영적인 욕구와 신앙체험의 갈증을 해소할 영적 프로그램의 부족을 원망하며 교회 밖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방황하기 일쑤이다. 그 위험성과 해악에 대해 특별한 경각심이 없는 정도는 약과요 아예 심하게 매료되어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아래에 옮겨보는 근래에 가톨릭 언론매체에 실린 교우들의 인터뷰 내용은 이러한 현실인식이 필자만의 주관적인 착각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주고도 남는다.
-일산에 사는 김 소화데레사(59): 『미국에서 살 당시에 만났던 뉴 에이지 활동가들은 느낌이 굉장히 신선하고 좋았어요. 내가 갖지 못했던 용기를 갖고 있었던 것 같고, 특히 정형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교과서적인 사고방식을 답습하지 않는 새로운 목소리를 갖고 있었죠』
-서울대교구 ㅇ본당 신자 박 안나(27): 『뉴 에이지가 어때서요. 뭐가 잘못된 건가요? 뉴 에이지라는 조지 윈스턴의 「겨울(DECEMBER)」이나 영화 「사랑과 영혼」 등의 작품들은 좋기만 하던데요』
-서울대교구 ㅅ본당 신자 이 프란치스코(47): 『잘 사용하면 좋지 않아요? 요가나 명상법 같은 건강법은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이처럼 가톨릭 신자들은 식별력이 없다. 시쳇말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정도의 좋은 마음들만 가지고 산다.
목자들은 어떠한가? 목자들이라고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다. 필자에게는 「신흥영성운동」과 관련하여 많은 이들이 상담을 요청해 온다. 미국의 교포 신자들에게서도 드물지 않게 온다.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 일차적으로 「본당 신부님」에게 문의를 해보고 나서 여전히 답답한 것이 남아서 수소문 끝에 필자에게까지 오게 되었노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들은 신부님들이 그 실태에 대하여 너무들 모른다고 하소연한다. 알아도 과소평가하며 천하태평이라고 불평한다. 또 모르면서도 전혀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요컨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떼들은 방황하고 목자들이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 가톨릭교회가 처한 평균적이며 비극적인 현실인 것이다.
피해사례
몰라서 그렇지 신흥영성운동(뉴에이지)은 심각한 영적 부작용을 초래한다. 필자가 직접 들은 사례의 종류들만 해도 다음과 같다.
-초월명상 등 뉴에이지 서적에 빠져있던 청년이 악성 정신질환자가 된 경우(다수).
-명문대학을 다니는 수재가 대순진리회에서 기를 받은 후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경우.
-전통(무속관련) 민요를 직업으로 부르다가 단 1분도 기도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경우.
-수도자가 기와 명상에 빠져 환속하거나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경우(다수).
-기수련(대표적으로 「단월드」)을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교회를 떠난 경우(다수).
-기치료 받다가 우울증에 걸린 경우(다수).
-「마음수련」하다가 정신질환자가 되고 이혼까지 한 경우.
이들은 최소한의 실례들일 뿐이다. 신자들은 목말라 하고 있다. 신자들은 영적으로 불량 음식을 먹고 병들고 있다. 이는 정확한 현실이다. 결코 필자의 과민인식이 아니다. 목자라면 다음과 같은 주님의 통탄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양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져 온갖 야수에게 잡아먹히며 뿔뿔이 흩어졌구나. 내 양떼는 산과 높은 언덕들을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내 양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찾아다니는 목자 하나 없다』(에제 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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