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대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친구의 권유로 얼마전 불교의 한 사찰에서 마련한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조용한 사찰에서 스님들의 생활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심적으로 편안해지는 느낌이 좋아 올 여름에도 참가할까 고민 중입니다. 그런데 천주교 신자가 이처럼 다른 종교의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A. 그리스도교는 단순히 지식의 종교나 명상의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활동하는 종교입니다. 신비생활과 명상의 위대한 성인이었던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생이 저물어갈 때 우리는 우리의 사랑에 대해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추구하는 참된 평화와 위안은 호흡법이나 자세 등의 어떤 기술적인 것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에서 형성되는 정화와 사랑에 의해 씻겨지는 「깨끗한 양심」에 의해서 참된 평화와 위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평화를 주러 온 줄 아느냐? 아니다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 34)라는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죄에 대한 투쟁과 통제하기 어려운 욕망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거짓 평화와 거짓 위안에 빠질 것입니다. 형제님의 행동은 자칫 하느님을 비인격적인 막연한 힘으로 오해할 수 있고 기도의 본질을 혼동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 안에서나 다른 종교에서 행하는 어떤 신체적 행위들은 평온과 긴장 완화의 느낌, 유쾌한 감정, 아마도 영적 안녕과 흡사한 빛과 따스한 현상들을 자동적으로 받게 되는데 그러한 느낌들을 성령의 참다운 위안으로 간주하는 것은 영성생활을 전적으로 그릇되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자만과 허영심에 쉽게 빠지게 되고 이것을 통해 악마는 사람을 쉽게 속이고 믿음을 흐려지게 하여 하느님과의 일치를 막고 결국 하느님을 얕보게 된다고 십자가의 성 요한은 가르칩니다(가르멜 산길 제3권 8장 1절).
『완전한 길이 얼마든지 있는데 무엇 때문에 알쏭달쏭한 것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려고 하십니까?』(완덕의 길 18장 9항).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