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나씨는 우리 본당의 여성 부회장이다. 대소변을 못가리는 여든이 가까운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도 온갖 궂은일에 제 일처럼 열심이다. 또 남편과 함께 참외나 수박 등 하우스 농사를 짓느라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그럼에도 자녀들이 학교를 마치고 제 앞가림을 하게 되었다며 늘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벨리나씨는 대부분의 농촌 여성들이 그렇듯이 아내요 엄마, 며느리요 농사꾼인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산다.
잘못된 농업 정책과 구조적 모순 때문에 겪는 어려움 말고도 농촌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돈 안되는 논농사를 포기한 농민들이 환금작물인 딸기, 수박, 참외, 호박, 메론 등 하우스 농사에 매달리면서 농촌 여성들은 남성 못지않은 강도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일년에 몇 번 본당 공동체가 잔치를 벌일 때도 남성들과 달리 대부분 여성들은 주방 한쪽에서 음식을 차리거나 설거지를 한다.
여성은, 특히 농촌 여성은 전통과 관습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주연이 아니라 엑스트라로 정해진듯 하다. 농사일과 가족들의 수발에 치이고, 널뛰듯 하는 농산물 가격에 내둘리는 농촌 여성들은 가끔씩 남편들의 화풀이나 술주정의 애꿎은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농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달프다. 하지만 이 모든 고달픔을 남편과 가족,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참아내는 농촌 여성들은 위대하다. 농촌 여성들은 삶 그 자체가 이미 예수를 너무 쏙 빼닮았다.
예수 가라사대 첫째가 꼴찌되고 꼴찌가 첫째된다는 말은 허튼 빈말이 아니다. 교회가 사회적 통념이나 관습상 한 번도 반역을 꿈꿔보지 못한 농촌 여성들에게 첫째의 자리를 마련하거나 내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겨울 「지역 여성 농민을 위한 문화교실」을 열며 이런 초대장을 보냈다.
『여성 농민들은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농사꾼으로서 1인4역의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여, 저희 천주교 구담성당에서는 지역 여성 농민들의 애환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의미에서 「지역 여성 농민을 위한 문화교실」을 열고자 합니다』
예수가 있어 꼴찌가 첫째가 될 희망을 가지고 살듯이, 교회가 있어 고단한 여성 농사꾼들에게 기쁨과 희망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오늘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내려다보며 서 계신 성모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기도한다.
『어머니 마리아여, 우리 농민을 위하여 빌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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