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교리 가르치다
조선인 첫 순교 영광
슨뿌성(駿府城)에서 기리시탄 금제가 발령되어 이에야스의 가신들의 개역과 궁정 귀부인의 유배 소식이 퍼졌다. 에도(江戶=東京)에 있던 프란치스코회 소텔로(L.C.Sotelo 복자) 신부는 당시 장군의 측근이며 기리시탄에 호의를 가진 혼다 마사노부(本多正信)의 가신으로 있던 요아킴 하치칸(八官)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요아킴 하치칸은 조선인으로 대단히 진실한 기리시탄이며 신심회 회장이었다. 하치칸은 자택을 교회로 하여 매주 일요일에 교리를 가르치고 배교자가 있으면 회심자로 전환시켜 점점 신자수를 불리고 있었다. 극히 신중하게 행동하며 충분히 주의하고 있었지만 많은 신자들이 드나드는 것은 신부가 있기 때문이라고 부교(奉行=막부파견의 행정관)는 눈치 채고 집 주인 하치칸을 소환하였다.
하치칸은 동료 7명과 함께 체포되어 곧바로 옥으로 연행되었다. 이들은 하느님이 주신 은총에 대해 감사의 말을 주고받았다.
1613년 7월 1일, 포졸들은 전원을 말에 태워 큰 거리를 지나 나병원과 시내 사이에 있는 도리코(鳥越=도쿄와 아사쿠사의 중간지역)라는 처형장으로 끌고갔다. 에도 기리시탄들의 지도자 하치칸과 동료 7명은 말에서 내리자 곧바로 땅에 무릎을 꿇고 『주님 저의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전능하신 천지의 창조자이신 주님을 믿습니다』 『예수 마리아…』라고 기도하면서 벌써 자기의 목을 칼 앞에 내 밀고 있었다. 집행인은 무참하게도 목을 잘랐다. 무사들은 칼을 시험하느라 전신을 토막토막 잘라냈다.
이 날은 주민들을 경고하기 위하여 각 신심회의 지도자만을 처형하였다. 8명의 목을 네거리에 높이 달아놓고 그 옆에 선고문을 내 걸었다.
「이들은 법도를 어기고 기리시탄이 되었고, 그 위에 지도자였기에 이와 같이 되었다」
이리하여 요아킴 하치칸은 조선인 첫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조선인 하치칸과 동료 7분의 목은 밤낮 7일간 감시되어 있었다. 감시인 두목은 배교하였지만 기리시탄이었기에 순교자들의 목을 건네주기로 약속하였다. 동네사람들은 하치칸의 유해를 처형지에서 가까운 곳에 매장하였다. 유해는 완전한 모습을 보존하고 있었다. 빈센트와 요한은 동네 고유의 묘지에 매장하였고 토막이 난 다른 5명의 순교자들은 아사쿠사 나병원의 새 묘지에 안장하였다.
그 다음 날 14명의 기리시탄들도 같은 장소에서 참수 당하였다. 칼을 시험하기 위하여 모두 토막토막 내었다. 이들은 배교를 약속해 두었는데도 회심하였다는 이유였다. 장군은 에도와 아사쿠사에 있는 교회와 병원을 모두 파괴하도록 명하였다. 당시 프란치스코회는 아사쿠사에 나병원과 수용소, 부속 성당, 에도의 로사리오 성모성당이 있어 포교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었다.
박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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