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사랑 감사하고 나누자”
‘모퉁이의 머릿돌’
우리 본당에는 ‘막달레나 기도방’이라는 작은 기도방이 있습니다. 이 기도방에는 70평생을 사시다가 늦게서야 하느님을 사랑하게된 막달레나 할머니의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할머니는 지난봄에 위암선고를 받고 큰 수술을 하게 되셨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병문안을 갔을 때 할머니는 제 손을 잡고 말씀 하셨습니다.
“제가 이 나이까지 사는 동안 제일 큰 기쁨은 하느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분이 하느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성당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오순도순 사랑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큰 은총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다 베풀어 주셔서 지금껏 건강하게 살았으니 이제 모든 것을 다시 하느님께 바치고 가고 싶습니다”하시며 통장 두 개를 꺼내 놓으셨습니다.
한 통장에는 돈 500만원이 들어있었고, 또 한 통장은 전세금 700만원을 찾은 돈이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홀로되셔서 사시는 동안 아끼고 모은 할머니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할머니의 통장은 할머니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막달레나 할머니는 이제 그것을 하느님께 모두 바친 것입니다. 나는 할머니의 뜻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이 소중한 봉헌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상의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의 집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할머니를 위해 반은 남겨두고 나머지 반으로 본당의 빈방에 기도실을 꾸몄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정성을 함께 모아 아름다운 기도방이 완성되었습니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신 할머니를 모시고 기도방을 축복하는 날 할머니는 “하느님이 아니시라면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저 하느님께 감사합니다”하시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단칸 전세방을 떠나 양로원으로 기쁘게 가셨습니다. 막달레나 기도방에는 지금도 새벽부터 한 밤중까지 막달레나 처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왔을 때 빈손으로 왔으며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빈손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래 비었던 손을 가득 채우는 데에만 급급해 하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우리네 인생의 목표가 그렇게 채우는 일로 가득 찬다면, 한없이 내 것을 늘려 나가기 위해 닥치는 대로 움켜쥐고 사는 것이 인생이 되어버린다면 우리의 삶은 추루해집니다.
붙잡고자 하지만 잡히지 않을 때 괴로움은 우리 앞을 큰 힘으로 가로막게 될 것입니다. ‘내것’이라고 움켜잡고 있던 것을 잃어버릴 때 우리의 삶은 괴로움과 전쟁이라도 벌이는 듯 소란스러워집니다. 세상을 내가 소유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내 만족의 수단으로 여기고, 인생을 내 욕망을 채우는 시간으로 여기고 사는 사람들은 인생의 땅위에 넘어집니다.
사랑이 아닌 소유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자기 스스로도 외로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넘어지게 합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심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탐욕의 진창에 빠지게 합니다. 더 잘되어야 한다는 욕망은 오로지 자신의 보양과 행운에 인생을 탕진하게 합니다.
“집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는 말씀은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전해주시는 복음입니다.
복된 삶이란 하느님의 것을 내것으로 차지하려고 발버둥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에 감사하며 나누지 못하고 움켜쥐려고 아우성치는 삶으로부터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리고 하느님께서 내 안에 심으신 사랑의 열매를 맺는 삶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드려야 몫을 그분에게 드리는 일이 정의며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결실을 맺는 것이 공평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삶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되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삶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세상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헛된 걱정을 하지 않고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하느님께 필요한 것을 아뢰는 사람은 인간에게 헤아릴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삶을 감사하며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되 하느님의 몫을 하느님께 드릴 줄 알고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삶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김영수 신부〈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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