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교회 일방적 의존 탈피한 토착화 시급”
복음화 수행위해 토착화 불가피
이웃 종교와 연대·협력 도모로
‘사랑의 문화’ 건설에 투신 강조
공의회 가르침 따른 적극적 쇄신과
양적성장 걸맞는 내적깊이 갖춰야
2년내 ‘덴징거’문헌 번역 마무리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본격화된 지역교회들 안에서의 토착화 작업은 특히 비서구적 지역 교회들의 참된 복음화 과업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으로 요청돼 왔다.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심상태 몬시뇰은 30여년의 신학 연구 활동을 통해, 이러한 시대적 소명에 일관되게 매진해온 몇 안되는 신학자이다. 11월 5일 퇴임식을 가진 심상태 몬시뇰을 만나, 퇴임에 즈음한 소회와 함께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황과 과제를 성찰하는 기회를 가졌다.
▲퇴임을 맞은 소감이 어떠신지요.
1976년 서툴기 그지없게 강의 생활을 시작했던 교수 생활이 30년째를 보내며 정년을 맞게 되어 감개 무량합니다. 저의 신학적 의식 형성에 큰 영향을 주신 은사님들, 최민순·정규만·선종완·이문근 신부님 등 여러 스승들께서 60세를 맞기 전에, 혹은 넘기시고 즉시 타계하신데 비해 살아서 퇴임을 맞게돼 송구스럽고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퇴임 후 비애감에 젖지 않도록 따뜻한 배려를 주시는 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 김건태 신부님을 위시해 교수와 직원 제위, 그리고 학생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동안 이룩한 학문적 실적이 너무 초라해, 보다 철저하게 시간 관리를 하지 않고 지나온데 대한 자괴감이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토착화의 어려운 작업을 지속해서 일관하고 계시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1970년 초 독일 뮌스터 교구 신학생들과 함께 쾨스펠드라는 지역 인근의 베네딕토회 계열 수도회에서 피정할 때, 불교 선(禪) 명상법을 원용해 좌식(坐式) 묵상을 실시한지 오래됐다는 것을 알고, 받은 충격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유불교를 위시한 아시아 종교들이 뿌리를 내린지 오래된 지역 출신이면서도 10년이 넘는 신학생 신분으로서 다른 아시아 종교들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였던 자신이 매우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에 바탕을 두고 모인 하느님의 백성’으로 규정하고 다른 종교의 신봉자들도 다양한 양식으로 교회로서의 하느님 백성에 관련돼 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전통적인 고유 종교, 문화 자산을 교회 생활 안으로 수렴하는 신앙의 토착화 작업을 촉구했습니다.
공의회는 특히 비서구권 지역교회들이 토착화를 추진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개별 민족이나 종교의 전통이 보편교회의 일치 안으로 통합되면서 고유성을 잃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보편성의 풍요함에 기여하게 되는 까닭에 토착화 작업이 장려된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복음화 과업이 올바르게 수행되기 위해서 토착화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 이 작업 수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 안에서 토착화 신학, 그리고 토착화의 과제는 여전히 요원합니다.
공의회 이후, 오늘날의 교황청은 더 이상 과거의 교황청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보편적 교회의 다양성을 드러냅니다. 교황으로부터 시작해, 많은 교황청 관계자들이 각 대륙과 국가 출신으로 구성돼 문화적 다양성을 드러내고, 다른 그리스도교계와 종교, 사회 각 영역과 대화하고, 우호적 관계를 맺으며, 공동선 증진을 위한 연대적 협력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획일적이 아닌 보편적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려는 노력을 진지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고유 문화·종교 수렴해야
그런데 한국교회는 토착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냉담한 자세를 보입니다. 공의회 이전의 폐쇄적, 배타적, 로마-서구적 교회 수호에 주력하며 아시아 내지 한국 고유의 종교-문화 자산을 수렴하는 토착화를 위해 진정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아직도 신학 사상, 전례 양식, 신심 운동, 영성 수행, 교리 교육, 건축 양식 등 교회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서구 교회에 일방적으로 의존합니다.
▲한국교회가 복음화 소명을 충실하게 실현하기 위해서 현대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 어떤 시대적 변화와 조건, 그리고 인간 및 사회 환경과 여건에 주목해야 할지요.
21세기에 공의회가 도래했다고 선언한 ‘새로운 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 혁명 이래 수평적 민주 질서가 전근대적, 수직적 군주질서를 대치하는 과정이 서구에서 시작돼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우리 사회에서는 90년대 이래 진행되는 사회, 정치 질서의 민주화와 전자정보화의 확산 과정과 함께 구성원 모두 사회적 지위, 신분과 무관하게 존중되는 풍토가 정착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고도의 생명과학과 기계기술에 의거, 인간이 ‘초인’처럼 세계를 자신의 의사에 따라 조형할 가능성이 커지며 반생명적 행태도 비례해 확산될 기미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오늘날 부익부빈익빈 현상과 함께 ‘죽음의 문화, 문명’이 더 한층 확산되고 고착화될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습니다.
가능성과 위기를 동시에 드러내는 상황에 직면해 교회는 공의회를 통해 성직자 우위의 교계제도적 교회관을 지양해 하느님 백성의 삼위일체적 친교 교회관 정립을 도모함으로써 모든 계층의 인간을 존중하라는 시대 요청에 부응하고, 공동선 증진을 위해 다른 이들과 연대할 의사를 천명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변화에 유의하면서 부과된 역사적 과업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친교 교회로의 쇄신’을 도모해 현재 대세로서 정착단계에 들어서는 개인 존중의 질서 확립, 확산의 견인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종교와의 협력을 도모하며, 하느님 나라로서의 ‘사랑의 문화, 문명’ 건설에 투신해야 합니다.
이런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토착화는 복음의 진리를 뿌리내리는데 불가결한 소인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올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40주년, 지난해는 한국천주교 200주년 사목회의 개최 20주년이었습니다. 이 회의들이 오늘날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지요.
공의회는 현대 상황 안에서 요청되는 교회의 쇄신을 도모해 부과된 복음화 과업을 적절히 수행하려는 새로운 자세를 정립,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으로부터 ‘성령의 위대한 선물’로 일컬어진 획기적 의미를 지닌 사건이었습니다.
위기대안, 공의회 가르침속에
200주년 사목회의 역시 공의회 가르침에 입각해 안으로는 성령으로 충만한 새로운 교회를 지향하고, 밖으로는 온 겨레에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해 사명을 완수하고 고통 받는 동포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표시해 누구나 인간답게 사는데 이바지하도록 소집됐습니다.
오늘날 위기를 알리는 징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차동엽 신부는 이를 ‘물이 새 나가는 바가지’로 비유하며, 신자들의 이탈이 계속될 경우, 5년, 잘해야 10년의 기회가 주어져 있을 뿐이라고 경고, 교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한국교회는 위기 극복에 필요한 대안을 공의회의 가르침과 사목회의 의안 내용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미 위기에 대한 해답을 마련해두고 그것을 외면하는 기이한 면모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서 신학 연구의 현황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지, 그리고 한국의 신학 연구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지요.
한국교회는 21세기에 교회 안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아시아 교회 안에서 복음화율이 가장 높고 경제적으로 안정되며, 사회적 위상이 가장 높은 지역교회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양적 성장과는 대조적으로 신학은 깊이 면에서 일본이나 대만보다 나을 것이 없고, 넓이 면에서 인도나 스리랑카 신학에 미치지 못합니다.
아시아 지역교회 안에서 한국 교회와 신학이 ‘머리가 빈 졸부 집단 교회’로 불린다는 사실이 한국 교회와 신학의 현주소를 시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신학은 ‘고인 물’ 수준을 조속히 탈피해서 심도 있고 광범한 연구를 통해 성숙을 기해야 합니다.
세계교회 활성화에 앞장서자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신자들에게 꼭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국교회의 일거수일투족이 보편교회와 다른 지역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그대로 노출돼 있음을 유념하면서 교회 지도자들은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진실된 자세로 교회 쇄신을 도모함으로써 노쇠한 구미 교회와 미약한 다른 지역 교회들의 기대에 부응해 세계교회 활성화에 앞장서는 지역교회로 도약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교회 안에서 구성원들 사이에 친교를 도모하는 한편, 사회악 근절과 공동선 증진을 위해 열린 자세로 이웃 그리스도교 교단들과 종교들과 연대를 도모하면서 헌신적으로 투신함으로써 ‘소금과 빛’으로 생활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퇴임 후에도 수원가톨릭대에서 명예교수로 활동을 계속하라는 임명을 받게 됩니다.
그 동안 다뤘던 주제들을 더 보완, 단행본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고, 신앙과 윤리 도덕에 관한 가르침인 라틴어 문헌, 일명 ‘덴징거’(Denzinger) 문헌을 주교회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3년 계획으로 번역하는 작업이 2007년 여름까지 완료되도록 다른 위원들과 함께 노력할 계획입니다. 또한 시복시성주교특위의 신학전문 위원으로서 창설 주역들에게 합당한 자리를 마련하는 일에 미력이나마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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