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흐름을 유수라 하더니 지금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어느 가난한 시골 본당에서의 일이다. 오늘날 처럼 조기 교육 바람이 불던 시대도 아니었고 유치원은 노래나 춤이나 가르치는 정도였다. 그것도 돈있는 자녀들만 다닌다는 인식을 하던 시대였다.
유치원 경험이 별로 없던 햇병아리 수녀 시절 순명 하나에 목숨을 걸고 찾아간 곳은 말만 유치원이지 하꼬방(판자집) 그 자체였다. 교실 하나에 재래식 화장실 하나, 의자 몇 개, 조그마한 리더 올겐 하나가 전부였다.
입학식날 어린이는 단 일곱명. 지금 같으면 가장 이상적인 학급이 되겠지만 그 당시는 본당도 어려워 전교 수녀 한명 유치원 수녀 한명 이었다. 유치원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가씨 한명과 나!
지역 여건상 군인들이 많이 상주하던 곳이어서 군인 자녀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군인들은 비행장 닦느라 모두 이동돼가고 극히 일부분만 남아 있었다. 차츰 아이들이 늘어 21명이 되었지만 숫자와 상관없이 유치원 홍보를 위해 극장에서 발표회를 가지면 어떻겠느냐고 본당 신부님께 조심스레 말씀드렸더니 쾌히 승낙하셨다. 극장을 빌려서 하기로 했지만 아무것도 가진게 없었고 하느님 섭리하심에 온전히 맡기고 일을 시작했다. 철없고 경험이없어 무식이 용감했다.
본당 회장이하 주위 사람들은 괜히 망신과 창피를 당하게돼 교회까지 망신 당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였고 나 역시 걱정이 되었다. 그럴 때 마다 성당으로 예수님께 달려가는 수 밖에 없었다.
낮동안 아이들과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을 했고 저녁에는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계속했다. 앞 뒤 분간 못하는 천사들 때문에 너무 걱정이돼 잠이 오지 않았다. 너무 어려 가르칠 것도 없었다.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대나무로 엮어 솜을 입히고 눈사람을 만들어 씌웠다.
드디어 발표날. 무대 막은 올랐고 음악은 흐르는데 한명이 옷을 잘못 입는 바람에 눈이 가리워졌다. 보이지도 않는 채로 무대로 나가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서 한 구석에서 열심히 춤을 추는 모습이라니. 극장 안에는 폭소가 터졌고 환호성과 함께 기립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관객이 얼마나 많았던지 2층과 복도까지 대만원이었다. 공연은 내 걱정과는 상관없이 대 성공을 거뒀다.
모든 것을 무사히 마치고 방에 들어와 끝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울고 겨울비 답지 않게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이때 우리 수녀님이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수녀! 하느님이 정말로 수녀님을 도와준 줄 알겠데이』하고 나가셨다. 내가 무엇이길래 하느님이 나를 이렇게 도우시나.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해서 눕지도 못하고 밤새 꿇어앉아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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