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에서 여성신자의 비율은 미사 참례에서 뿐 아니라 각 신심.사도직단체, 구역.소공동체 모임, 교회 내 각종 행사 참여 등에서도 월등히 높다. 2003년 한국천주교회 교세통계에 따르면 여성신자비율이 58.4%이지만 일선 사목자들은 실제 활동 신자수의 80% 이상은 여성이라는 의견을 보인다. 그러나 각종 조사에 따르면 여성신자들은 교회 내 지도자로서의 참여와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남성신자에 비해 크게 소외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참여분야도 자발적인 사도직활동보다 전례봉사 혹은 행사 등의 안내, 뒷바라지 등 단순 노동력 제공에 치우쳐 있다. 20년 전 이뤄졌던 사목회의에서도 편향된 여성신자들의 위상과 역할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사목회의 의안에서 밝힌 「가톨릭 여성의 위치」
사목회의 의안은 평신도 부문 별정문제로 「가톨릭 여성의 위치」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의안은 한국교회 내 여성문제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첫 문건으로, 전 교회 차원에서 「여성사목」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당시 교회 내에서는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과 관심 부족으로 「여성의 위치」를 평신도와 관련한 공식적인 의안으로 다루지 못하고 별도문제로 첨부돼 아쉬움을 남긴다.
여성문제는 「여성이 단지 남성과 성(性)이 다르다」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차별받고 억압받는 문제를 말한다. 교회 내의 다양한 여성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여성의 존엄성과 올바른 역할을 되찾아주는 것, 즉 여성의 가치와 은사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여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 고유의 역할을 통해 교회와 사회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남녀신자들의 공동협력을 통해 건강한 교회를 가꾸고 더욱 활발한 복음화를 이루는 것이다.
사목회의 의안에서도 『여성문제는 근본적으로 존엄성과 관계된 인간의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의안은 『가톨릭여성의 소명은 단순히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등의 소명에 앞서 여성의 인격적인 자아실현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시대 요청에 따라 여성의 지위 향상을 어떻게 정당하게 실현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또 『초기 교회에서는 여성도 다양한 선교활동의 증거자, 치명자로서 사제적?예언자적?왕적 능력을 발휘했고 한국교회에서도 초창기에는 많은 여성들이 선교, 교육활동에 적극 나섰다』며 현대 교회 여성들의 역할이 200년 전 초기 교회 때보다 뒤떨어져 있음을 밝혔다. 『교회나 현대사회는 여성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도 여성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실제적인 노력은 하지 않고 노동력만 이용한다고 할 수 있다』는 반성도 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목적 배려로는 ▲여성의 지도 능력 인정 ▲교육 기회 제공 ▲여성문제연구소 설립 ▲여성지도자 양성 등을 제시했다.
-교회 내 여성의 올바른 역할과 지위향상 노력
한국교회에서는 1963년 서울가톨릭여성연합회 설립을 시작으로 전국적인 여성연이 조직돼 여성계몽교육과 활동이 공식적으로 자리잡았다. 교회 발전에 큰 공헌을 해온 여성연의 활동은 그러나 일방적인 봉사와 기초적인 교육 혜택에 머무는 수동적인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도 있다. 77년에는 한국가톨릭농촌여성회가 설립됐으며, 80년대 후반에는 여성신학이 본격 소개되면서 노동, 빈민, 사회복지, 환경 등의 다양한 현장에서 사회와 교회 문제를 여성의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다.
90년대 이후부터는 교회 내 여성의 존엄성과 정체성, 역할모색을 위한 실질적인 기구 설립이 눈에 띤다. 93년에는 여성신학에 근거해 교회쇄신과 사회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가 설립돼 여성억압의 구조적인 문제와 제도적 개선을 위해 구체적인 쇄신방안을 내세워왔다. 이후 한국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는 「여성분과위원회」를 신설하고 교회 내 여성문제를 의식있게 다뤄왔다. 96년에는 올바른 성서해석과 연구를 위해 장상연 산하에 「가톨릭여성신학회」가 설립됐으며, 전문직 여성들을 교회 인력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톨릭여성연구원」이 설립돼 활발한 연구활동과 교육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대부분 교회의 미비한 지원과 관심 속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거나 여자수도회의 지원에 힘입은 것이 특징이다. 제도교회 차원에서는 여성의 공적 활동을 인정하면서도 여성 고유의 존엄성과 정체성 확립에 앞서 가정 안에서의 모성과 가사노동을 우선하는 경향으로 여성문제를 표면화하고 논의하는데 소극적이었다는 평이다.
제도교회 안에서 이뤄진 가장 큰 변화로는 주교회의 평신도 산하 여성소위원회의 설립을 꼽을 수 있다.
2000년에 설립된 여성소위는 교회 안팎의 여성문제를 연구하고 여성신자들의 능동적인 교회활동 증진을 목적으로 여성 관련 교회문헌집 발간, 여성지도자 연수에 힘써왔다. 특히 올해는 「여성사목」 방향 및 정책수립을 위한 워크숍과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등 실질적이고 장기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울러 각 교구 시노드를 통해서도 여성문제 해결이 사목의 주요 분야로 부각돼 여성신자 고유의 역할을 찾는 작업이 보다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를 통해 ▲여성신자 신원회복 및 교육 ▲여성관련 부서 설치를, 인천교구 시노드에서는 ▲여성지도자 양성 ▲교회운영과 사도직활동에 여성참여 보장 ▲여성사목전담기구 설치 등을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외국교회에 비하면, 특히 동남아시아국가들과 비교해도 뒤늦은 편이다. 아시아만 해도 인도, 필리핀, 말레이시아 주교회의 등에는 여타 위원회와 동격의 여성위원회가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인도교회의 경우 현재까지 148개 교구에 각각 여성국과 위원회가 설립, 운영되고 있다.
-실태와 대안 모색
이러한 활동들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는 전체적으로 특히 성직자와 남성신자들의 여성문제에 대한 의식과 관심은 크게 낮은 것이 현실이다.
올해 여성소위가 실시한 「한국교회 여성사목 방향 정립을 위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교회 내 성차별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남성신자들은 평균 37.4(100점 환산), 성직자들은 51.1로 성차별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 수도자들과 한가여협회원들은 각각 75.8, 55.6으로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내보였다.
또 현재까지도 각 본당의 사목회장은 물론 단체장들은 대부분 남성들이 맡고 있다. 조사에서는 남성신자와 성직자 뿐 아니라 여성신자들도 사목회장은 능력이 좀 떨어지더라도 남성이 맡아야한다는 의견을 가장 높게 제시하고 있다.
특히 본격적인 「여성사목」을 향한 발걸음은 전 교회 차원의 지지를 얻고 있지 못해 지역소공동체 구석구석까지 확산하는데 어려움이 크다. 기존 여성소위의 설립도 교회 지도자들의 의식 변화보다 장상연과 천여공의 지속적인 요청과 아시아주교회의연합 권고 등의 영향이 컸다는 평가다.
주교회의 여성소위 운영위원장 이영자 수녀는 『여성의 능동적인 교회활동 참여를 위해 일선 사목자들이 먼저 여성사목 관련 의식조사결과 및 제언 등에 관심을 갖고 사목활동에 적극 반영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교회 내 여성 관련 교육과 여성의 참여기회의 확대는 가장 시급히 요청되는 사안들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뿌리깊은 가부장제 안에서 습관화된 의식을 총체적으로 개선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여성 뿐 아니라 성직.수도자를 포함한 남녀 모두의 의식교육에 힘써야한다고 제언한다. 서울시노드에서는 신학교 교육과정에 여성신학을 도입해야한다는 의견도 제시된 바 있다.
우수한 가톨릭여성인력과 NGO 활동 등을 교회 안으로 적극 끌어들이고, 젊은 여성의 교육과 교회 내에서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민간단체활동 지원을 위해서도 구심점을 마련해야할 것이다. 또 여성의 능동적인 참여화 리더십 향상을 독려하는 모범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거나 외국교회의 실천사례 등을 적극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실적으로 여성들이 활동과 참여의 가장 큰 장애물로 겪고 있는 육아문제에 대한 사회적, 교회적 차원의 배려 또한 여성신자 활동 환경을 마련하는데 필수적이다.
사목회의 의안 중 「가톨릭여성의 위치」에 관한 내용들은 여타의 평신도 위상 문제와 마찬가지로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제안되고 있다. 아직은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지만 이러한 문제제기들이 단순히 의식에만 남지 않고 실제적인 변화와 발전을 위한 재도약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어 「여성사목」의 전망을 밝히고 있다. 이제 관건은 실제 사목현장에서 이러한 제안들이 얼마나 적용되고 구체적으로 활용될 것인가다. 각 본당 또는 소공동체 안에서부터 이뤄지는 작은 실천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여성문제 해결과 관련한 노력들은 몇몇 지도자들의 부르짖음으로 남고, 여성신자의 모습 또한 「봉사」라는 이름 아래 소위 행사도우미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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