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북한 이탈자 대량 유입사태에 따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정부 관측으로는 그간 5년 사이에 남한 행을 시도한 숫자가 급속도로 증가해 5000명이 넘은 상태며 몇 년 내에 1만명 수준이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여당과 정부에서는 이와관련 연간 40억원 정도인 이탈 주민 교육·지원 예산을 65억원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키로 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이탈 주민 정착 지원시설인 하나원의 시설을 확충, 교육기간도 현행 2개월에서 3개월까지로 늘리는 등의 종합대책 마련에 착수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급증하는 추세의 북한 이탈주민들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고 특히 이들 상당수가 곧바로 남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민간 종교단체의 지원은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은 760명. 이번 대규모 입국을 계기로 연말까지는 2000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입국한 1281명에 비하면 배 가까이 늘어나는 셈이다.
또 이탈주민 수가 늘면서 이탈 이유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배가 고파 북한을 이탈하는 생계형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돈을 벌기 위해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통일연구원의 조사에서 나타났다. 가족단위 이탈이 크게 늘어난 것도 최근에 나타난 변화며, 북한 사회의 하위계층보다 중상류층의 탈출, 입국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특히 여성 비율, 가족들의 동반 이탈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1999년 하나원에 입소한 북한이탈주민 60명 중 여자는 20명으로 3분의 1에 불과했으나, 올 상반기 하나원에 입소한 490명 중 여성은 325명으로 66%가 넘는다. 이번에 들어온 468명의 북한이탈주민들 중에도 70%가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국내에 들어온 이탈자 3760명 중 여성은 59%인 2222명에 이른다.
여성 이탈자 수가 많아진 것은 초기의 생계형 이탈이 자유를 찾아오는 「삶의 질 추구형」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생계 자체가 문제가 됐던 90년대 중반에는 가족을 책임진 가장의 이탈이 많았지만, 지금은 북?중 국경을 통과하기도 쉽고 중국에 나와서 취업하기가 쉬운 여성들의 이탈이 더 늘어나고 있다. 가족 동반 이탈이 늘고 있는 것은 이미 국내에 들어온 이탈 주민들이 북한 내에 있는 가족들을 데려오고 있는 것이 한 원인이다.
이렇게 이탈 이유와 형태가 다양해 졌다는 것은 그들이 한국에서 요구하고 추구하는 것도 다양해 질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나 지원 단체들은 북한이탈주민의 양적, 질적 변화에 따른 종합적인 정책과 대책을 계발,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또 다시 방황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순조롭게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대강의 정책이 아닌 이탈자들의 정착과 안정에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보다 치밀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 이탈주민들 지원 문제와 관련, 민간 단체 중에서도 종교 역할이 특별히 주목 받고 있다. 가톨릭을 포함한 종교 단체들은 전 지역단위 조직과 인력 , 시설, 지원 의지 등 도움 역량이 상대적으로 양호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탈주민의 사회 적응에 대한 지원과 보호의 일차적 책임과 역할은 정부가 맡고 있으나, 이들의 실질적인 지역사회 정착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자발적인 협조와 지원 노력이 요구되고 있으며 종교 단체들은 특히 인력 시설 뿐만 아니라 헌신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가톨릭 교회의 북한이탈주민 지원 상황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김운회 주교) 산하의 「북한이탈주민 지원 소위원회」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며 교구 민화위나 본당 수도회 차원에서도 부분적인 지원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 귀순동포정착지원협의회, 남북사회복지 실천운동본부 등 전문 조직이 구성돼 공세를 펴고 있는 개신교와 비교할 때, 또 교회 안에서도 대북 지원 분야에 비할 때 「체계적」 「효율적」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아직 무리가 따른다.
북한이탈 주민에 대한 교회의 관심 필요성은 무엇보다 「사람」「인권」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다. 『같은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면에서 그들을 하느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밝힌 주교회의 민화위 한 관계자는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 생활에서 제일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사회 적응과 주위의 편견인 만큼 신자들부터 이들에 대한 고정된 시선에서 탈피, 「함께」 해주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안의 한 형제 자매라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품어 안으면서 다가갈 때 그들은 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같은 인식은 특히 본당 사목자들이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해 갖는 관심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면에서 사목자들의 열린 시선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한편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 교회에 선경험과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 해 줄 수 있다는 면에서도 교회가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할 대상이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오혜정 수녀는 『남한 교회가 멀리 통일후의 복음화를 준비할 때 북한이탈주민들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면서 『그들 모습 안에서 어떤 어려움들이 있는지 살펴볼 때 향후 북한 주민들과 신자들에 대한 보다 적절한 접근 방안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수녀는 『북한이탈주민 문제와 함께 북한 난민 대북 지원 문제가 균형을 맞추어 가는 것도 중요하고 지속성 있게 유지되는 것도 필요하다』며 『꾸준히 같이 걸어나간다는 생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탈주민들의 구성이 다양화 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교회 지원 역할은 분야를 특화하고 전문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힌다. 특히 정부의 공식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실행을 담당할 참여 단체와 관심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무연고 청소년, 단신 여성 입국자, 장애 입국자, 무연고 노인층의 보호 지원에 보다 많은 여력을 쏟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이탈주민 전담부서가 각 교구 민화위나 사회사목 사회복지 부서 안에 설치되거나 거주 지역 중심으로 북한이탈주민 사목 특화 지구 혹은 본당 등을 지정 하는 방안 등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교회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람」「인권」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남한의 한 공장을 견학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
◆ 인터뷰 / 1년여 남한 생활 북한이탈주민 박율리안나씨
“자유 찾았지만 살길 막막”
▲ 박율리안나씨
2003년 7월에 도착 1년여의 남한 생활을 경험한 박율리안나씨는 1997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을 탈출, 연변 태국 등을 거쳐 입국한 경우다.
1997년 첫 탈출후 중국에 머물다 체포돼 2002년 북한에 들어갔으나 4개월여만에 다시 북한 땅을 빠져 나왔던 박씨는 이때 제3국을 통한 남한 행을 결정, 태국 방콕으로 갔다가 6개월여 난민촌 생활을 하던 중 남한에 안착하게 됐다.
『교회가 많은 힘이 됐습니다. 교구 민족화해위원회를 통해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는 도움을 얻었고 또 외롭고 힘든 상황에서 정서적으로 갈피를 못잡고 있을 때 「성당 가는 날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박씨가 가톨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북한이탈주민 교육을 담당하는 「하나원」에서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오혜정 수녀를 만나면서였다. 거주지가 확정되자 민화위는 지역 본당에 사전 연락을 해주었고 본당 신자들은 박씨의 살림 준비를 돕는가 하면 정기 방문도 해주면서 안면을 텄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을 느꼈다는 박씨. 그후 예비신자 교리에 참가, 지난 6월 20일 영세를 했고 9월에는 견진성사도 받을 예정이다.
『자유는 찾았지만 「살아갈 길에 대한 막막함」 속에서 매 주 한번 예비신자 교리가 있는 날과 주일이 기다려질 정도였다』는 박씨는 그만큼 1년여 동안의 남한에서 적응하는 과정을 얘기할 때 교회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보름에 한번 정도 병원 치료를 해야하는 등 아직도 건강이 회복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는 그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드리운 여러 편견들 속에 일을 찾기도 쉽지 않다』면서 『중국에서는 말은 못해도 막일이라도 찾기가 쉬운데 이곳은 같은 동포인데도 무시와 차별이 심한 것 같고 인맥이 없으면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간혹 교회 안에서도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느끼곤 한다고 토로한 박씨는 『그런 면에서 최근 입국한 수백명의 북한이탈주민들이 반갑기도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적응해 갈까」하는 우려와 걱정이 더 크다』고 밝혔다.
탈북 신자들 끼리의 지속적 모임도 만들어 지기를 바란다는 박씨는 또 『이들이 교회내 통일 사목 단체들과도 연결되어 함께 일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 지면 좋겠다』고 전했다.
연변에 남겨진 남편과 6세된 아들의 입국 수속을 준비중이라는 그는 『앞으로 북한이탈주민들을 비롯 어려운 이들을 위한 사회복지 활동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기대를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