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천주학쟁이들아, 모두 무릎을 꿇어라. 「나는 천주교인이 아니다」라는 말 한마디만 해라. 그러면 바로 풀어주겠다. 그러나 끝까지 배교하지 않는다면 모진 고문과 죽음만이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다』
『저는 죽어도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세상 어떤 것과도 하느님과는 바꿀 수 없습니다』
신자들의 당찬 대답에 포졸들의 매질이 더해졌다. 위협적인 호통과 으름장에 몇몇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주리를 틀리며 지르는 비명소리가 소름을 돋게 했다. 「나는 천주를 모른다」는 말 한마디면 고통을 피할 수 있었지만, 아무도 그 말을 하지 않았다. 훌쩍거리는 흐느낌 속에서 오직 묵주기도 소리만이 아련히 울릴 뿐이다.
지난 8월 3일 강원도 횡성 풍수원성당. 이곳에서는 마치 시계가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듯, 살벌한 풍경이 재현됐다.
수원교구 구산성지(전담=정종득 신부)가 마련한 「순교자 체득학교」의 셋째날 프로그램 「순교 체험」 현장. 전국 각 교구에서 참가한 중.고생 80여명이 순교자들의 고통에 온몸으로 동참하고 있었다.
이틀 동안 순교 성인들의 삶과 신앙에 대해 살펴본 청소년들은 성서를 통독하고, 교회사 강의를 들으며 선조들의 고귀한 삶 속으로 몰입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천주교 신자들을 모두 잡아들인다는 소문에 청소년들은 산길을 헤집고 다니며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이른 아침 성당을 출발해 횡성 인근 야산을 넘는 노정이었다. 피난 중에는 가톨릭 교회 주요 기도문을 모두 외워야 했고, 「천주가사」도 직접 지어야 했다. 6시간의 피난 끝에 지친 청소년들은 결국 모두 체포돼 주리를 틀리고 곤장을 맞는 모진 고문을 받았다. 처음엔 그저 장난이려니 했던 청소년들도 그때의 상황과 똑같이 재현되는 박해 과정을 경험하면서 하나둘씩 절로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한 중학생은 「나는 천주학쟁이오」라고 소리치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켜낸 순교자들, 이제는 그분들의 신앙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앞으로 신앙생활 열심히 할 거예요』(안치원.프란치스코.14).
『이렇게 힘든 여름 캠프는 처음이에요. 어제까지만 해도 불만스럽고 짜증만 났는데, 오늘에서야 깨달았어요.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박은지.가타리나.15).
행사를 기획한 정종득 신부는 『비록 예전의 순교자들이 겪었던 고통에는 비할 수 없겠지만, 오늘 행사가 우리 청소년들에게 신앙 선조들의 삶과 신앙을 본받고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체험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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