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2월 22일, 교황청 성직자성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인준을 받아 「거룩한 미사 지향」을 공표하였다. 이 교령이 나오게 된 동기는 여러 나라의 주교들이 그들이 안고 있는 미사예물에 관한 제반 문제에 대해 교황청의 뚜렷한 설명과 지침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개념과 종류
미사는 언제나 모든 이를 위한 미사이다. 미사 예물이란 미사 거행 전에 사제에게 주는 예물로써 이 예물을 받은 사제는 미사 중에 제공자의 지향도 기억해 주어야 한다. 이 예물은 미사 때에 바치는 봉헌 예물의 일종이며,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에게 기도와 봉사에 대한 보답으로 주는 사례금이기도 하다. 미사 예물의 종류에는 사제에게 전달되는 직접 예물과 일정한 기금의 이익에서 나오는 기금 예물 그리고 기금 예물로 미사를 드려야 할 사제가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다른 사제에게 위탁하는 예물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직접 예물만 통용되고 있다.
역사
미사 예물 제도가 교회 안에 언제부터 들어왔는지는 정확히 말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가 초 세기부터 실시한 미사 중의 봉헌 예물이 미사 예물의 뿌리 또는 원시적 형태였다는 사실이다. 2세기 중엽에 쓰여진 유스티노의 「호교론」을 보면, 그 당시의 신자들은 미사에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 외에 다른 예물들도 가지고 와서 고아, 과부, 가난한 이 등에게 나누어 주었다(호교론 제1권 67장).
4세기 이후에는 신자 수가 증가하고 그들이 바치는 예물도 다양해짐에 따라 봉헌 행렬 예식이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말씀의 전례가 끝나면 신자들은 긴 행렬을 지어 그들이 가지고 온 예물들을 사제나 부제에게 바치면서 자신들의 생명도 주님께 봉헌한다는 표시를 하였다. 지역 공동체는 이 예물들의 상당 부분을 교회 운영과 봉사자들의 생활 및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사용하였다.
그 후 서방 교회의 신자들은 미사 시작 전에 예물을 봉헌하는 동방전례의 영향을 받아 미사 시작 전에도 별도의 예물을 바쳐 교회가 필요로 하는 곳에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빈손으로 미사에 참여하는 것보다 미사 전이나 도중에 예물을 바치면 하느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는다는 신념이 퍼지게 되었고, 나아가 모든 예물을 혼자서 부담하면 미사의 은혜가 더 크리라고 믿기에 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8~9세기 경에는 갈리아를 선두로 하여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등지에서 일부 신자들이 미사 전에 예물을 봉헌하고 개인 지향대로 미사를 드려달라고 청하게 되었다. 이것이 미사 예물 제도의 시작이며, 이 제도가 점차로 널리 확산되어 중세 말엽(14~15세기)에는 사실상 정착되었다.
이 밖에도 미사 예물이 형성, 발전된 요인은 중세 중엽이래 약화된 봉헌 행렬 예식, 사제와 수도자의 증가, 사적 미사와 기원 미사의 보편화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미사예물은 처음부터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오해를 일으켰기에 교회는 기회 있는 대로 지침을 내려 남용을 막곤 하였다. 현행 교회 법전(945~958조)에서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반영하여 미사 예물에 대한 새 규정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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