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과 쇄신을 모토로 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과 성과는 전례 분야에서도 매우 뚜렷하게 나타났다. 1963년 12월 4일 교황 바오로 6세의 재가를 얻어 공포된 「전례헌장」은 부차적인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공의회가 당초부터 의도한 전체의 목표 안에서 작성된 것이며, 교회 구성원의 능동적인 전례 참여라는 오랫동안의 열망이 실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주년 사목회의의 네 번째 의안인 「전례」 의안은 이같은 취지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을 인용하면서, 전례가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의 생활과 활동의 정점이요 원천임을 강조한다.
즉 전례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중개자의 역할을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계속 수행하는 교회의 공적인 예배행위』로서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교회의 행위인 까닭에 가장 우월한 행위이며 교회의 모든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공의회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사목회의 전례의안은 「전례헌장」이 시대적 요구에 적응하고 전례의 능동적 참여를 촉진시키기 위해 전례의 쇄신과 육성책을 강구할 것을 촉구했듯이, 전례 거행의 불변적인 요소를 유지하면서도 한국의 전통적 문화와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 쇄신과 개혁을 이룰 것을 요청하면서 이를 특별히 토착화의 필요성과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물론 의안은 정당한 근거와 이유 없이 민족 및 종족주의나 편의주의적인, 잘못된 전례의 토착화는 가톨릭 교회의 보편성을 약화시키고 분열을 조장한다는 우려에서 보다 신중하고 철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함을 함께 지적하고 있다.
구성과 내용
사목회의 전례분과위원회는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전문위원회, 연구위원회, 전국 교구대표 대의원회 등 6회의 회합을 거쳐 초안을 수정, 보완해 1984년 9월 20일에 사목회의 사무국에 전례 의안 최종 결의안을 제출했으며, 이는 주교단과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대표들이 모두 참석한 전체회의에서 가결됐다.
이렇게 확정된 전례의안은 서론과 6개장의 본론, 그리고 결론격의 19개 제안사항으로 구성됐다.
우선 서론에서는 전례에 대한 간단한 정의와 그것이 교회 생활에서 갖는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전례의안이 그 토대로 삼고 있는, 공의회의 쇄신과 개혁의 취지에 입각해 전례의 쇄신과 토착화를 위한 연구 방향과 방법을 제시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신자들의 능동적 전례 참여를 위해 이미 개정되고 쇄신된 로마 표본 전례서들을 한국 교회의 문화와 시대적 상황에 맞도록 개정하고 적응하도록 하는 지침으로 제시된다.
6개장으로 구성된 본론의 첫 장은 전례 쇄신과 그 일반적 원칙을 명확히 하고 있다. 즉 전례거행의 불변적 요소는 보존하되, 한국의 전통적 문화와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 개혁하며, 교황청과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 지역교회들의 지침을 참작해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여기서 의안은 이러한 쇄신과 개혁의 작업을 추진해나가기 위해서 시범 본당이나 수도회를 지정해 과감한 시도를 도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후 제2장부터 6장까지는 성사와 준성사, 각종 기도서와 성음악, 교회건축, 성미술 등 영역별로 교회의 기본 가르침과 일반 지침, 보다 세세한 지침들을 제시한다.
의안은 제2장 「각 성사 예식에 대한 지침에서 먼저 미사성제(성체성사)와 관련해,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 만찬에서 유래한 미사는 말씀의 전례가 첨부된 후 그 본질에는 변함이 없이 이어졌지만, 여러 지역의 전통과 풍습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와 예식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7세기경에 완성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미사 양식은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고정된 형태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까지 이어졌고 이후 통일성을 견지하면서도 지역에 따라 적응할 다양성이 인정됐다.
미사의 기본적 양식의 통일성은 전세계 가톨릭교회의 공통된 신앙고백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필연적이다. 하지만 의안은 이러한 기본적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변경할 수 있는 부분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의안은 이처럼 미사성제(성체성사)를 비롯해 다른 6가지 성사에 대한 쇄신과 개혁의 지침을 제시하면서, 이미 로마에서 출간된 각종 성사 예식서를 활용하면서도, 각 지역교회의 주교회의나 성사 집전자에게 주어진 권한 안에서 지역 교회의 전통과 풍습에 따라 구체적으로 변경 수정할 수 있음을 일러주고 있다.
특히 각 성사의 쇄신과 적응에 있어서 강조되는 것 중의 하나로서, 전례 행위가 사적인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공동체의 행위이기 때문에 집전자이든 신자들이든 공동 집전자의 의식을 갖고 각자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능동적이고 공동체적인 전례 참여를 강조했다. 아울러 모든 신자들이 마치 구경꾼처럼 참석하지 않고, 의식적이며 경건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예식과 기도를 깊이 이해시키고 직무 수행자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제3장 「준성사와 평신도 예식서」는 성사를 어느 정도 모방한 거룩한 표징들로서 신자들에게 영신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준성사들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다. 우선 영신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한 축성, 강복, 구마 등의 예식서가 마련돼야 함을 지적하고, 여전히 성직자의 수가 부족하고 공소가 많은 한국 실정에서 평신도들이 주관할 수 있는 예식들에 대한 일반 지침과 세부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의안은 이러한 준성사들이 한국적 전통과 풍습이 가장 많이 활용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토착화를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하면서 이러한 신심행사들은 전례와 조화를 이뤄야 함도 아울러 지적하고 있다.
한편, 신자들의 일상에서의 기도생활과 관련해 기도서에 대한 지침이 제4장에서 제시된다. 공적 예배를 위한 전례서와 달리 신자들의 신심행사와 일상 신앙생활을 강화하기 위한 기도서의 개편에 있어서 주요 전례행사, 신심행사, 성가와 일상 기도 및 청원 기도 등을 한권에 수록하도록 개편을 촉구했다.
제5장과 제6장은 성음악과 성미술에 대해 다룬다.
성음악에 대한 5장에서 의안은 교회 음악의 보존과 육성을 강조하면서 그레고리오 성가와 다성곡 뿐만 아니라 신자 대중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종교적 대중 성가도 적극 장려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의안은 교회 음악 전문가들을 부단히 육성하고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에 맞는 성가와 기악곡의 창작, 보급을 촉구하면서 이를 위해 전문적 기구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본론의 마지막 장인 제6장 「교회 건축 및 성미술」에서는 종교적 예술과 성예술은 하느님과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영광을 위해 봉헌되는 것임을 지적하고 교회 건축이나 성예술은 전례 집전과 신자들의 참여를 위해 적합하도록 배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히 의안은 한국의 성당이 여전히 서구의 모방과 이식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적 건축 양식과 예술은 한국의 전통 문화와 정신에 입각해 독창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한국인이 성당을 볼 때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례의 토착화
200주년 사목회의 전례의안은 사목회의의 기본 정신에 따라서 사목적 관점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 의안은 또 공의회 기본정신인 전례의 불변적 요소와 가변적 요소 안에서 통일성과 다양성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아울러 능동적인 전례 참여를 위해서 전례헌장이 지시하는 가변적 요소를 최대한 민족 특성에 따라 적응시킴으로써 전례의 공적 특성과 예배적 특성을 종합하고 민족 문화와 조화, 일치함으로써 선교적 의미와 역할을 주목하고 있다.
이는 곧 전례의 토착화 문제와 직결되는 것으로써 사목회의 12개 의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토착화의 의지와 중요성이 전례의안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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