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모님이 지상 생애를 마친 후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상영광으로 올려짐을 기념하는 승천 대축일입니다. 이 교리는 일찍부터 교회의 전승으로 받아들여지다가 1950년 믿을 교리로 선포된 교리입니다.
이 교리가 교회의 전승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신앙적 이유 때문입니다. 교회는 뛰어난 덕행으로 하늘나라에서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공적으로 인정한 사람들을 성인이라 표현하는데 성모님은 성인들 중의 으뜸 성인이요 신앙의 모범입니다. 때문에 성모님이 하늘나라에 계시다는 사실은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고, 승천이란 이러한 성모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극적인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성모승천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주는 교훈을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희망입니다. 인간의 몸을 지니신 성모님께서 하늘로 올림을 받았기에 우리도 하늘로 오를 수 있다는 표시요, 성모님처럼 우리도 하늘(구원)로 올림을 받을 수 있도록 성모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호소가 바로 이 사건의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성모승천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모든 것을 묵묵히 이겨나가신 성모님의 모습을 우리 삶속에서 본받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축일을 지내면서 오늘 복음과 연결하여 필자가 묵상하고자 하는 바는 신앙의 성장 과정입니다. 우리는 성모님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기에 성모님은 처음부터 완성된 신앙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사람이라 생각하며 그분께 교훈을 얻기 보다는 부러워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성모님의 신앙은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의 신앙이 아니라 갖가지 장애와 혼란을 극복하고 완성으로 나아간 신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그 일면을 복음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엘리사벳을 방문한 사건과 성모님의 노래로써 이 두 부분은 서로 상반되는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엘리사벳을 방문한 사건. 많은 이들은 엘리사벳 방문 사건을 엘리사벳을 도와주기 위한 방문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만 성서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은 아닙니다.
성서가 마리아의 선행을 강조하고자 했다면 마리아의 도움이 가장 필요할 때, 즉, 엘리사벳이 아기를 낳은 후에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도와주었어야 했는데 마리아는 아기를 낳기 직전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임신 후 여섯달이 되던 때 방문하여 세달을 머물다가 출산이 임박할 때 나자렛으로 돌아갑니다. 도와줌이 목적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인데 말입니다. 이 사실은 방문의 목적이 출산을 돕기 위함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방문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해답을 마리아에게 있어 엘리사벳의 잉태가 갖는 의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엘리사벳의 잉태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준 상징입니다. 자신이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처녀로서 임신할 수 있다는 증거가 아이를 못 낳는 늙은 여인 엘리사벳의 임신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혼란스러운 마음, 흔들리는 신앙에 대한 증거를 찾고자 함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라는 가장 위대한 신앙의 응답을 했음에도 마리아는 연약한 처녀였기에 양가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이 혼란스러운 마음에 해답을 얻고자 함이 바로 엘리사벳을 방문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리아의 신앙은 후반부에서는 극적으로 변화됩니다. 마리아의 노래(46절 이하부분)에 나타나는 마음입니다. 이 노래는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찬미가요 감사가입니다.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찬양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증거를 찾고자 하는 우리의 보통 마음과 같던 마리아의 신앙이 하느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신앙인의 모범이 되는 성숙한 신앙으로 변화되는데 성서는 이러한 극적인 반전에 가장 큰 역할을 엘리사벳 성녀의 마리아에 대한 찬양과 축복의 말에서 찾고 있습니다. (1, 42~46 참조).
지면상 서둘러 결론을 내려 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질 수밖에 없는 혼란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혼란이 나쁜 것이긴 해도 성모님처럼 답을 얻고자 한다면 혼란은 또 다른 성숙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기억해야 할 점은 우리가 마리아의 신앙을 변화시킨 또 하나의 엘리사벳이 됨으로써 혼란을 겪고 있는 이 시대의 작은 마리아들이 위대한 신앙의 사람으로 변화하도록 칭찬과 격려, 축복의 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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