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솔라따 선교수도회 회원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라는 표현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바오로 사도가 『선교란 유다인종이 아닌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 동족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아직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수도회는 1993년과 1999년 총회에서 「비크리스천들을 위한 선교」라는 초창기 정신으로 돌아가야 하며 또 존재방식을 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한바 있다.
꼰솔라따 선교수도회가 복음화를 위해 펼치는 활동은 두가지 측면에서 이뤄진다. 그것은 복음 선포와 인간의 총체적(영혼과 육신)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두번째 측면은 여러가지 사업들이나 정의 평화 활동 등을 통해 진작된다.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성당 옆 혹은 교리실 곁에 병원, 진료소, 학교, 목공소가 자리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꼰솔라따회 선교사들이 최근들어 복음화 활동에 있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이들은 비크리스천들과 함께 도시 빈민들이다. 그 다음이 교리교육, 선교사, 성소 발굴 등을 통한 지역교회 봉사와 종교간 대화다.
선교사와 성소계발, 종교간 대화, 도시빈민 사목은 특히 한국의 꼰솔라따 선교수도회에서 두드러진 활동이다.
수도회의 한국 진출은 1986년과 1987년 꼰솔라따 선교수도회 총장과 참사회가 아시아 진출을 모색하던중 제44차 세계 성체대회 개최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던 한국에서 선교활동의 가능성을 찾고 선교사 파견을 결정함으로써 이뤄졌다.
마침내 1988년 이탈리아와 스페인 콜롬비아 브라질 출신 선교사 4명이 한국에 도착했고 인천교구의 도움으로 부천시 역곡동 상가 주택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이 전개됐다. 아시아 최초의 수도회 지부였다.
인천 만석동 달동네에서의 봉사활동을 시작으로 전개된 꼰솔라따회의 한국 선교는 타 종교와 나누는 대화의 장, 무신론자까지도 환영하는 「위로의 샘터」 공동체와 양재동 구룡산밑 비닐하우스촌 사람들과 함께하는 구룡마을 공동체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진출 초기부터 본당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소외된 지역에서의 활동 전개에 주력해온 꼰솔라따 선교수도회는 후원회 회지 「꼰솔라따」도 발행하고 있고 우간다와 모잠비크 등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들을 돕는 구체적 나눔도 실시하고 있다.
꼰솔라따 선교수도회 선교사들의 특성 중 하나는 온 일생을 선교에 바친다는 것. 그런 만큼 공부뿐아니라 선교사 양성에 필요한 다양한 과정을 통해 오랜 준비 과정을 거쳐 선교사 소임을 부여받는다.
수녀회원(한국 미진출)들과 함께 1902년 케냐를 시작으로 현재 세계 24개국에 진출해 있는 꼰솔라따 선교수도회는 아프리카와 유럽, 북미, 남미 등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고 2003년과 2004년에는 몽고와 지부티에서 새로운 선교 사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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