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한국교회에서는 한국교회 고유의 토착화된 상제례 예식서를 담은 상장례 예식서 「상장예식」이 출간됐다. 이 예식서는 우리 민족 고유의 종교 심성, 특히 상장례의 풍습에 적응, 토착화된 첫 공식 전례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예식서가 승인되기까지 무려 1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우리에게 전례의 토착화가 얼마나 어렵고 신중을 요하는 작업인지를 잘 보여준다. 주교회의 산하 한국사목연구소가 1989년 5월 29일 관계 전문가들로 「상제례토착화연구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작업을 시작한 뒤 무려 13년이 걸린 것이다.
전례서 개정 작업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19세기 말부터 전세계에서 일어난 전례운동, 그리고 특히 선교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전례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지적을 바탕으로 로마식 전례의 통일성을 보존하면서도 각 지역 주교회의가 전례를 조절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함으로써 지역 주교회의를 중심으로 전례의 쇄신과 적응을 시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은 바로 200주년 사목회의 전례 의안의 기본 바탕과 정신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전례의안은 전례 쇄신의 원칙으로서 통일성 속의 다양성을 지향하면서, 『전례 거행의 불변적인 요소는 보편교회의 전례가 지니는 특유성이므로 변경 불가한 요소임을 인식하면서, 변경 가능한 사항은 전례의 근본 목적과 기본 정신을 더 잘 살리기 위하여 한국의 전통적 문화와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 알맞게 변경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공의회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선교 지역에서는 공의회 정신에 따라 전례 토착화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는데, 예외 없이 가장 먼저 착수된 것이 전례서의 번역이었다. 이는 사목회의 이전부터 한국교회 안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뤄진 일이다. 한국교회에서도 1964년 주교회의 인준을 통해 전례위원회가 설치돼 전례서 개정 작업이 꾸준하게 이어졌고, 특히 사목회의 이후 이러한 전례서 개정 작업에는 더욱 박차가 가해졌다.
시노드에서의 전례 강조
이러한 모든 시도들이 지향하는 것은 신자들의 적극적인 전례 참여라고 할 수 있다. 사목회의 이후 각 교구별로 개최된 교구 시노드에서도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과 생활의 복음화를 이루는 원천으로서 전례의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지적들이 많이 나타나 있다.
인천교구 시노드 최종문헌은 「공동체의 축제」로서 전례의 중요성을, 사목회의 전례의안의 내용을 따라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교구민들 가운데 『성사와 전례가 사제의 영성적, 내적 충만으로부터 거행되는 축제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의무적으로 혹은 형식적으로 거행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문헌은 또 『평신도 역시 사제에게만 의존하는 소극적인 참여 태도로 인해 전례가 따분하고 무미건조하며 답답한 관례 행위로 전락해버린 실정』을 개탄하고, 따라서 『전례를 쇄신시키고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과제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함께 공유해야 하는 몫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인천교구는 특별히 교육과 홍보의 중요성을 지적하면서 개정된 전례와 교회 용어에 대해 신자들에게 널리 홍보하고 숙지하도록 돕는 한편, 전례 학교를 개설해 전례 봉사자를 교육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시노드는 전례분야 의안을 별도로 작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종문헌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의 성직자 의안 부분에서 사제의 직무와 관련해 전례의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다.
문헌은 가톨릭 교회가 전례와 성사를 중심으로 교회 생활이 이뤄짐을 지적하면서 때로는 이것이 지나친 형식주의로 비춰지기도 함을 상기시키고 성사와 전례 거행을 위한 충분한 교육과 준비를 중요한 것으로 언급했다.
이에 따라 사제는 신자들에게 전례의 의미를 알려주고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하며 전례 규정이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전례 의식에 생동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토착화와 관련해서, 한국교회가 순교 영성의 독특한 전통을 축적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이를 바탕으로 신앙의 토착화에 힘쓰며, 전례 자체에도 토착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당부한다.
성음악
교회 음악과 미술, 성당 건축에 있어서도 사목회의 의안은 토착화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한다. 우선 교회 음악에 있어서 10여년 전과 오늘날 교회 안에서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국악이나 이른바 생활성가가 전례 안에 많이 도입돼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도 전통적인 교회 음악에 견주어 이러한 음악들을 교회 음악으로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공의회 이후 시대와 지역에 따른 토착화의 일환으로 이러한 시도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이제는 그것이 낮설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목회의 전례 의안은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에 적합한 성가와 전례용 기악곡 등이 부단히 창작 보급되도록 할 것』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전문적인 기구를 설치할 것을 지적하고있다. 여기서는 특히 『그레고리오 성가와 다성곡이 존중될 뿐만 아니라 신자 대중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종교적 대중성가도 적극 장려할 것』을 강조하는 한편 파이프 오르간이 교회의 전통 악기로 크게 존중돼야 하지만 『한국의 전통 악기 사용도 신중히 검토, 시도되어 새로운 한국 교회 음악의 터전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80년대 이후 교회 음악의 토착화에 대한 관심과 추진 강도가 크게 높아졌다. 특히 국악 성가와 미사곡에 대한 시도가 이어졌고 1988년 예수고난회 강수근 신부가 처음으로 국악 미사곡을 작곡했다. 이후 90년대 들어 꾸준하게 교회 안에서 국악 성가와 미사곡들이 시도됐다.
7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생활 성가는 1974년 성바오로딸 수도회에서 외국곡을 번안한 앨범 「세상에 외치고 싶어」를 내놓으면서 시작된 이후, 8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
교회 음악 토착화의 과제에 대해 일선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전담 전문 기구 설치와 성가대의 육성이다. 사목회의 전례의안에서는 이를 명확하게 촉구하고 있다. 즉 213항과 214항에서 성가대의 부단한 육성과 교회 음악 교사 또는 지도자들의 훈련, 전문적 기구 설립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성미술과 성당 건축
교회 미술과 관련해서는 특별히 신자 미술인들의 노력이 적지 않은 성과가 축적돼 있다. 이미 1930년대 이후 교회 미술의 초석이 다져졌고 신자 미술인들의 모임을 중심으로 토착화를 위한 노력이 꾸준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교회 당국 차원의 관심과 지원 노력이 신자 미술인들의 개인적인 노력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많은 관계자들은 교회에서 예술가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풍토가 아쉽다고 토로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재 한국 교회 안에서 가톨릭 미술가들의 활동이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며 이에 따라 교회 당국의 관심도 역시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 미술 가운데, 건축 부문은 가장 구체적인 논의와 실천적 적응이 가능하다는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성당 건축은 그 목적과 기능이 뚜렷함에 따라서 교회의 적절한 관심과 지원이 동반될 때 가시적인 성과를 얻는데 가장 적합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 교회 안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민족 고유의 전통 건축 양식을 그리스도교의 정신과 가르침, 성당의 본래적 취지와 기능을 고려해 표현하는 시도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사목회의 전례의안은 한국의 성당이 『아직도 무차별한 모방과 이식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한국적 전통 양식과 예술은 한국의 전통 문화와 정신에 입각해 한국인들의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고 독창력을 갖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며 『그래서 한국인이 성당을 볼 때 이질감이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을 강조했다.
한 교회 미술 관계자는 『성당이 시대의 정신과 교회 정신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성서와 전례, 성당 건축 전반에 대한 연구와 교육이 선행될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 교회 안에서는 이제 수시로 성당 건축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성당 건축에 있어서 단지 편의성과 기능성에만 국한되지 않고 교회 건축이 지녀야 할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연구가 선행될 때 교회 미술과 건축의 쇄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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