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도 이젠 한풀 꺽였다. 무더운 여름이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몇년전 교도소에 교리를 하러 나가던 때였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요구조건이 많다. 이런저런 일들을 부탁하지만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못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인격 대 인격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며 최선을 다했다.
조금씩 경계를 풀고 형사처럼 쳐다보던 눈빛도 사라지고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고 만나면 반가워했다.
어느 여름날 그날은 너무나 무덥고 후덥지근한 날이었다. 교리를 하던 도중에 너무 힘들어서 『정말 덥지요?』했더니 모두들 큰소리로 합창을 한다. 『하느님께서 소나기라도 한바탕 내려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했더니 그들 역시 『네!』라고 소리쳤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붕위에서 끄덕끄덕 하는 소리가 들려 낡은 함석 지붕을 고치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조금 열린 창문을 쳐다 보았더니 소니가기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여러분 이제 좀 시원하시지요? 고마우신 하느님 감사합니다』하면서 교리를 끝내고 나오니 마당에는 도랑처럼 물이 고여 흐르고 있었다. 펄쩍펄쩍 뛰어 건너면서도 그 당시는 깨닫지 못했고 알지도 못했다. 교도소 큰 대문을 나서니 햇빛은 쨍쨍 내려 쬐이고 아스팔트길은 녹아서 팥죽같았다. 집에 돌아와서 우리 수녀님께 『수녀님 비 안왔어요?』했더니 『비는 무슨 비?』 한방울도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어? 어? 교도소는 많이 왔는데?』라고 했더니 조금전에 보니 그쪽 하늘만 새까맣더라고 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하느님께 감사드렸고 두려움마저 느꼈다. 하느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또 알게 모르게 그분의 축복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조금만 불편하면 그 옛날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했던 것 처럼 불만과 불평으로 모처럼 좋은 일을 잊어버린다.
한발만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발자국마다 감사와 사랑인 것을….
어느날 교리를 끝내고 나오는데 요한이 옆에 다가오면서 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고기는 가져올 수 없으니 만두는 어떠냐고 했더니 엄지손가락을 위로 쳐들며 『수녀님 최고!』하며 좋아했다. 우리는 성탄절을 앞두고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왕만두 오천개를 떡과 함께 들고 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교도관이 웃으며 나무랐다. 불교와 개신교 모두 합쳐도 이런일은 없었다고 했다. 자꾸만 들어오는 사람들을 강당문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은 문을 잠그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삶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여러가지 모양의 삶이 있겠지만 진실된 삶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오늘도 저녁미사를 나오며 밤하늘을 쳐다본다.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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