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느 자매님의 체험담을 통하여 가톨릭 신자가 신흥영성운동에 빠지는 과정을 짚어보고 있는 중이다. 지지난 호에서는 처음 단계에서 경계심 없이 야금야금 빠져드는 과정을, 지난 호에서는 하느님을 부정(否定)하기에 이른다는 것, 그리고 정신을 차려 빠져나오려 할 때는 집요하게 붙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부분에서 자매님은 신흥영성운동의 핵심문제를 드러내주는 진술을 한다.
어느 자매님 이야기 3
다섯째,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한다.
자매님은 단호하게 유혹을 물리쳤다. 그 때의 해방감은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 대목에서 자매님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신흥영성운동의 정체와 관련된 단서를 드러내 주는 언급을 하고 있다.
『전화를 끊고 너무도 답답하여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무는 순간 그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머리에서 무언가 시원하게 쭉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느낌을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머리가 가벼워지는지 난 돌아온 탕자의 모습이었고 우리를 벗어나려 했던 한 마리의 양이었습니다.
이상하리만큼 미사참례를 하는 동안 머리가 어지럽고 띵 하던 것도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신부님, 이 모든 것을 정확한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매님은 신흥영성운동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무언가 시원하게 쭉 빠져 나가는 느낌」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조금의 과장이 없는 사실이다. 주관적인 착각현상이 아니다. 신흥영성운동을 책만 읽고서 식별하려는 이들은 이 현상이 어떤 현상인지 모른다. 신흥영성운동의 가장 큰 피해는 이론이나 개념에 있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어느 틈엔가 자신을 사로잡는 알 수 없는 힘, 자신도 모르게 덮씌워진 에너지에 있다. 기수련 또는 기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자연적인 에너지, 소위 자연지기(自然之氣)에 섞여(또는 묻어서) 다니는 정체불명의 영기(靈氣)가 있다는 사실은 책으로만 연구하는 학자들이 알 리가 없다. 이를 굳이 악령이라고까지 말할 필요는 없다. 이는 수련자들의 몸에 배어 있는 잡기(雜氣)들이다. 한의학적인 용어를 빌자면, 기수련을 하려는 이들은 대부분 건강이 좋지 않은 환자들이기에 이들에게서 발산되는 에너지가 병기(病氣)요 사기(邪氣)일 것은 당연하다. 이것들이 좁은 공간에서 함께 뒤섞인다. 수련자 가운데 정신질환자가 있을 경우 그에게서 정신을 혼미케 하는 탁기(濁氣)가 발산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잘 이해가 안가는 사람이 있거든 우리들이 흔히 체험하는 분위기(雰圍氣)라는 것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상하게 어느 곳엘 가면 「썰렁」하고, 어느 곳엘 가면 「살벌」한 느낌이 들고, 어느 곳엘 가면 「아늑」하게 느껴진다. 술집엘 가면 술 생각을 넘어 「음란」한 마음까지 동한다. 독서실엘 가면 「책」이 술술 읽히고, 성당엘 가면 갑자기 「경건」해 지면서 기도가 잘 된다. 이는 단순히 생각 때문이 아니다. 그 공간을 지배하는 에너지 때문이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일본의 대안의학 박사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이 세간에서 많이 읽혔다. 그는 「눈 결정은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그렇다면 물의 결정도 저마다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물을 얼려 결정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8년을 연구한 끝에 얻어낸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그 물이 사람의 마음과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영어, 일본어, 독일어 등 어느 나라 언어가 되었건 「사랑」, 「감사」라고 쓴 글을 보여준 물에서는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육각형 결정이 나타났고 「악마」라는 글을 보여준 물은 중앙의 시커먼 부분이 주변을 공격하는 듯한 형상을 보였다. 또 「고맙습니다」라고 했을 때는 정돈된 깨끗한 결정을 보여주었지만, 「망할 놈」, 「바보」, 「짜증나네」, 「죽여 버릴 거야」 등과 같이 부정적인 말에는 마치 어린아이가 폭력을 당하는 듯한 형상을 드러냈다. 한편, 물은 음악에도 반응했는데, 쇼팽의 「빗방울」에는 정말 빗방울처럼 생긴 결정이 나타났고, 「이별의 곡」에는 결정들이 잘게 쪼개지며 이별의 형태를, 「아리랑」에는 가슴이 저미는 듯한 형상을 보였다. 어떤 글을 보여주든, 어떤 말을 들려주든, 어떤 음악을 들려주든, 물은 그 글이나 말이나 음악에 담긴 인간의 정서에 상응하는 형태를 취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실험을 통해서 에모토 마사루를 비롯해 국내외 물 관련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과학적 사실을 확증하였다.
첫째, 모든 물질, 감정, 생각, 그리고 언어는 고유의 파동을 발산한다는 사실이다.
둘째, 이 고유파동들이 주변 대상들에게 전달되어 반응(간섭, 영향, 수용 및 기억)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셋째, 그 가운데 물의 정보 기억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물뿐 아니라 모든 물질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고 그 자극을 기억한다고 한다.
결국 이 사실들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이들은 종합적으로 앞에서 언급한 여러 유형의 에너지들이 자아내는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해명해 주고 있는 셈이다. 다만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氣)와 과학에서 말하는 「파동」 및 「에너지」 사이에 용어상의 차이가 있을 따름인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사람들에게서는 그 고유의 파장이 합해져서 경건(敬虔)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믿음도, 순명도, 감사도 그 고유의 에너지를 띠고서 그 사람의 영적 오라(aura)를 형성한다. 대조적으로 하느님을 부정하고 스스로 신적 경지를 탐하는 사람들에게서는 그 고유의 파장이 합해져서 불경(不敬)과 교만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설명을 위하여 극단적인 대립구도를 설정해 봤으나 이 세상 모든 종교와 영성들은 그 신앙내용에 따라 고유의 영성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가톨릭 고유의 영성에너지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이들이 다른 영성의 도량을 기웃거릴 경우 그쪽 영성 오라(aura)에 휩싸여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엄연히 과학적인 사실이다. 구약에서 우상숭배를 엄하게 금하고 신약에서도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마태 7,24)고 한 명령은 단순히 죄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영성의 문제이며 삶의 문제이다. 영적 집중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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