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에 귀의하고자 하는 뜻을 밝힌 천재화가 이중섭의 편지가 쓰여진지 50년만에 최근 발견됐다.
이중섭이 가톨릭에 입교할 뜻을 가졌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지난 1999년 2월, 가톨릭신문과 가진 구상(세례자 요한) 시인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가톨릭신문 1999년 2월 14일자 참조).
당시 구상 시인은 막역한 친구로 한국 근대사의 격랑을 함께 겪은 이중섭으로부터 받은 편지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면서 이같은 사실을 전했다.
구상 시인은 이 편지를 한 언론인이 빌려간 후 사망함으로써 분실됐다고 말했는데, 이번에 바로 그 편지가 발견돼 이중섭의 가톨릭 신앙 귀의 의사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200자 원고지 1매 분량으로, 세월의 흔적이 남아 누렇게 변색된 이 편지가 발견된 것은 한 인터넷 경매 사이트를 통해서였다. 누가 어떤 경로로 이 편지를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행히 이 편지를 부산 공간화랑 신옥진씨가 구매했고, 이 사실을 시인 배달순씨가 전해들어, 각각 편집위원, 편집이사로 있는 월간 「참 소중한 당신」 9월호를 통해 편지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이중섭이 작고하기 1년 전인 1955년 4월 14일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편지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弟)는 여러분의 두터운 사랑에 쌓여 정성껏 맑게 바로 참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는 하느님을 믿으려고 결심을 했습니다. 구 형의 지도를 구해 가톨릭 교회에 나가 제의 모든 잘못을 씻고 예수 그리스도님의 성경을 배워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성경을 구해 매일 읽고 싶습니다. 내일 15일 오후 4시경에 신문사(대구 영남일보)로 찾아 뵙겠으니 지도하여 주십시오. 제 이중섭』
이중섭은 원래 구상 시인보다 3년 선배였으나 평소 구시인의 인품을 높이 사 자신을 제(弟), 구시인을 형(兄)이라고 칭했다.
이중섭이 가톨릭 신앙에 귀의할 결심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일제 치하와 한국 전쟁을 지나오면서 겪은 좌절과 실의, 필화사건으로 남하한 뒤 겪은 고통, 특히 만년에 가족들과의 이별을 당하면서 겪은 고난들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를 항상 따뜻한 시선으로 대하던 구시인의 인간애와 믿음의 표양이 그러한 결심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화백의 평생의 보람이었던 일본인 부인 이남덕 여사 역시 가톨릭에 귀의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화백과 구시인의 만남은 1940년을 전후해서 일본 동경대학에서 처음 이뤄졌다. 만남의 순간 서로에게 이끌린 두 위대한 예술가는 이후 깊은 우정을 간직했고 피난시절 대구에 머물던 구시인은 방황하는 이화백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다.
구시인은 이화백이 발병한 뒤 병원에 입원시켰고, 이때 이 편지를 받았지만 우선 병 치료에 몰두했다. 이듬해 병이 재발한 이중섭은 구시인이 정훈교육차 일선에 나가 있을 때 홀로 숨을 거뒀다.
구상 시인의 고명딸 구자명(임마쿨라타.46)씨는 『이화백이 돌아가시기 전에 왜관에 있는 집에 와 머물기도 했다』며 『선친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여러 차례 이화백에 대해 회고하셨고, 특히 이화백과 함께라면 「공동예술상」을 제정하고도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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