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오전 9시 미사. 이호열 신부는 며칠 째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한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의아해 했던 봉사단원들이지만 이제는 그 의미를 가슴깊이 깨닫는다. 재래식 화장실을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추위에 견딜 수 있다는 것 이상의 뜻임을 며칠간의 봉사를 통해 체험하고 있다.
『우리는 몽골 청소년들과 한마음한몸이 되겠다며 이곳에 왔습니다. 환경도 언어도 틀리지만 이들과 한마음한몸을 이루며 살아 있는 것이 출발점이 돼 세계 모든 이가 하나되는 세상, 그리스도의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호열 신부가 강론을 통해 봉사단을 격려한다.
작업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비좁은 잠자리, 연일 계속되는 작업에 지칠 만도 한데 작업에 대한 봉사단의 의지만큼은 처음과 다름없다.
여전히 식당 앞 공터에서는 벽돌 찍기가 한창이다. 벌판에 놓인 벽돌이 한 장 한 장 늘어가는 것과 함께 봉사단원들의 벽돌 찍는 솜씨도 제법 늘었다.
2모둠(조) 장인 윤지애(마틸다·24)씨는 『처음엔 서툰 작업에 짜증도 났지만 이제는 작업능률이 올라 즐겁다』며 『벽돌만 만들고 정작 건물을 짓지 못한 채 돌아가야 해 아쉽다』고 말했다.
『짝짝 짝 짝짝! 대∼한민국!!, 짝짝 짝 짝짝! 몽∼골리아!!』
마굿간 짓기에 나선 봉사단원들이 잠시 짬을 내 월드컵 박수를 치고 있다. 엇박자 박수에 생소한 몽골 청소년들도 한국 봉사단원들의 리듬에 따라 박수를 흉내낸다.
말 두 마리가 생활 할 마굿간 작업도 고되긴 마찬가지. 네 귀퉁이에 사람 몸집보다 큰 기둥을 묻고 지붕까지 설치해야 하는 작업이지만 박수 한번, 함성 한번에 피로가 말끔히 가신다.
종묘장 설치작업도 탄력을 받았다. 종묘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온통 돌 투성이인 땅을 고르게 만들어 고운 흙이 깔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도록 곡괭이질, 삽질을 하며 한나절을 보내자 비로소 평탄한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몽골 일꾼들을 시켜도 이틀 걸리는 작업을 하루만에 끝냈어요. 여러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작업을 총괄하는 센터 봉사자 이기찬(시몬) 선생님의 칭찬에 단원들은 다시 힘을 낸다.
작업 마지막 날인 8월 11일. 45명의 봉사단원들이 보름간 땀 흘린 흔적들이 돈보스코 청소년 센터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컨테이너 세 동만 덩그러니 놓여있던 곳에는 이제 어엿한 건물이 세워졌다. 지붕작업은 몽골 일꾼들이, 건물 바닥 시멘트 작업은 단원들이 맡았다. 이제 나무로 잇대어 놓은 건물 앞뒤 벽은 단원들이 만든 벽돌로 채워질 것이다. 한 겨울 추위도 거뜬히 막아줄 튼튼한 건물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낸 것.
버려진 땅에 불과했던 곳에도 종묘장이 들어섰다. 벌판에 풀어놓고 기르던 말들에게도 집이 생겼다. 기둥을 세우고 송판을 엇대는 작업은 단원들이, 마굿간 지붕을 올리는 작업은 가볍고 민첩한 몽골 청소년들이 맡았다. 마굿간에는 「띠앗누리」 봉사단원들이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몽골어?한국어 현판 두개가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간이 진료소도 만들어졌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현지에 필요한 약품과 소독기, 의료 기기 등을 가톨릭중앙의료원의 협조를 얻어 청소년센터에 전달한 것.
센터 봉사자 이기찬씨는 『단원들이 흘린 땀 한 방울, 한 방울은 이곳 아이들이 추위를 이기는 든든한 방패막으로 아이들 가슴속에 오래도록 간직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센터 간 잠(16)군도 『언젠가는 형, 누나들처럼 저도 어려운 이들을 위한 봉사에 힘쓰고 싶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진정 바뀐 것은 따로 있었다. 처음 만날 때 그렇게 서먹서먹했던 몽골청소년들과의 나눔. 사랑으로 하나된 나눔이 불모지에 들어선 한 채의 건물보다 더 튼튼한 사랑의 열매로 드러난 것이다.
몽골에서의 마지막날인 8월 12일 파견미사. 띠앗누리 봉사단원들이 한국에서 준비한 티셔츠와 조끼를 마니또에게 입혀주며 작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지금 똑같은 옷을 입고 함께 기도함으로써 하나가 됐습니다. 오늘의 만남은 이곳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지금의 이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영원히 한마음한몸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경당을 가득 채운 몽골청소년들과 단원들. 지금 이 순간 누가 거리를 떠돌았으며 누가 부모가 없는 버려진 아이들이었는지는 의미가 없다. 같은 옷, 같은 몸, 같은 마음으로 하나가 된 양국의 청소년?청년들의 맞잡은 손을 바라보며 매일 식사기도 때 불렀던 노래를 떠올린다.
「하이라 호발 차그트∼보르항 텐드 비∼」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계시도다」
그들의 사랑 나눔, 한마음한몸을 위한 작은 몸짓은 이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그 시작에 하느님이 계시다.
▲ 14박 15일간의 일정을 마친 띠앗누리 봉사단원들과 청소년센터 학생, 교사들이 센터 앞마당에 모여 기념촬영하고 있다.
▲ 파견미사를 마치고 나온 허지혜(가브리엘라)양이 자신의 마니또(수호천사)에게 태극 부채를 선물하고 있다.
▲ 몽골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친 봉사단원들이 촛불을 켜고 둘러앉아 보름간의 일정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 마굿간을 완성한 봉사단원들이 한글로 쓰여진 현판을 마굿간 입구에 걸고 있다. 단원들은 몽골어와 한국어로 된 현판 두개를 만들어 몽골 청소년들과 함께 현판식을 가졌다.
■ 인터뷰 /봉사의미 깨달은 김정수 - 준수 형제
“은총 나누는 작은 행위”
김정수(프란치스코.21)-준수(미카엘.16.모자쓴 이) 형제의 「띠앗누리」 봉사단 참여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형 정수는 군 입대를 20여일 앞둔 상황에서, 동생 준수는 캐나다 유학 중 방학을 맞아 귀국해 봉사단에 참가했다.
『올 여름이 아니면 모일 기회가 없다며 가족들이 봉사활동을 만류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꼭 해보고 싶었던 해외 봉사활동이었고 동생과 함께 할 수 있었기에 올 수 있었죠』(정수)
『캐나다에서 가족 없이 혼자 생활하다보니 나 자신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남을 위한 일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이곳에서 많이 보고 느낍니다』(준수)
같은 모둠(조)이 아니기에 형제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취침 시간뿐. 하루동안 각자가 땀흘린 흔적들을 자랑(?)하며 숙소인 게르(Ger)에서 우애를 다진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건 보름간 함께 생활해 온 자신의 몽골 마니또(수호천사)들이다. 부모님의 배려로 이곳에 올 수 있었던 자신들에 비해 이곳 청소년들은 그럴 부모도, 따뜻한 집도 없는 처지다.
형 정수군은 『우리는 정말 하느님의 은총을 듬뿍 받았기에 이번 봉사는 그 은총을 나누는 작은 일을 한다는 생각』이라며 『군입대만 아니었다면 한 두 달은 더 이곳에 머물며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생 준수군도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다면 해외봉사활동에 계속 참가해 조그만 힘이나마 나누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마니또로부터 받은 팔찌와 목걸이를 자랑하며 내어 보이는 형제들의 얼굴에는 동료와 몽골친구들을 얻은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찾아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뿌듯함이 배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