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는 서구와는 달리 수많은 인종과 종교, 역사, 전통이 어우러진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아시아 가정들 역시 공통적인 과제를 안고 있는 한편 상이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특징들도 보이고 있다.
총회 「회의 자료」(Instrumentum Laboris, Workin Paper)에 대해 각국 주교회의에서 보내온 의견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번 총회에 참석한 아시아 각국의 가정과 가정사목의 현황, 그리고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목 프로그램들을 두 번에 걸쳐 살펴본다.
■ 아시아 각국의 가정현황
세계화의 영향
「회의 자료」는 아시아 가정의 상황에 경제적, 문화적 세계화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주교회의는 아시아 가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세계화(globalization)와 개발정책(policy of development)으로 나눠 분석한다. 이는 일차적으로 인도네시아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도 비교적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주교회의는 세계화의 조류를 거부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이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급속한 발달에 크게 기인한 것으로 분석하고 쾌락주의, 소비주의, 문화적 획일성을 조장, 아시아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 큰 영향을 미쳐 그것이 혼인과 가정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을 변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정보산업의 발달과 함께 세계화의 이념적 토대인 신자유주의, 자유무역정책들은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등 국제 금융기구의 지원을 받아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며, 이는 선진국을 더욱 부유하게 하는 한편, 가난한 나라들은 오히려 더 피해를 입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여러 의견서에서 공히 나타나고 참석자들에 의해서도 여러 차례 지적된다. 태국 주교회의는 의견서에서 세계화가 가족 구조, 혼인과 가정, 성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하고 있다.
FABC 사무총장 오스왈드 고미스 대주교는 『아시아 가정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가 문화적 식민주의』라고 지적했다. 최종문서 작성위원회 위원장인 올란도 퀘베도 대주교는 『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점들은 「세계화」의 악영향이 주요 원인』이라며 특히 서구 문화와 사고 방식을 전달하는 매스 미디어의 복음화가 큰 과제라고 지적했다.
세계화는 각국 개발정책의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서구의 모델을 따라 계획된 개발정책을 추진하면서 산업화를 이루고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소기의 성과를 거둔 반면, 이 과정에서의 사회적 변화는 가정과 가족제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됐다.
각국의 개발정책과 맞물려 추진되는 것이 산아제한 정책이다.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가 공히 선진국으로부터 인구 억제 정책을 강요받게 되고, 각국 정부는 이를 충실히 따른 결과, 이제 아시아 지역에서 출산율 감소는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 등 매우 심각한 사회적 결과를 낳게 됐다는 것이다.
아시아 가정에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요소들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각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빈곤
우선 아시아 가정들의 가장 크고 현실적인 문제는 빈곤의 문제이다. 특히 농촌의 빈곤 문제는 농촌 자체의 붕괴와 함께 아시아 각국에서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아시아의 빈곤 문제는 세계화로 인해 심화됐고, 특히 지난 90년대 말 여러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외환위기로 인해 최악에 달했다.
인도에서는 전체 인구의 40%가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농촌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농민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 못하며 가난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자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 빈민층을 형성한다.
인도네시아나 파키스탄, 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파키스탄은 인구 40%가 빈곤선 이하로 살고 있는 가운데, 특히 그리스도교 가정은 전체 인구의 97%를 차지하는 이슬람교 가정에 비해 극도의 사회적 차별을 받는 어려운 처지에 있다.
비교적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이나 일본, 대만 등의 경우에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즉 경제적 성장은 어느 정도 이룬 반면, 영적 빈곤의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지적된다. 일본 주교회의는 일본 가정들이 직면한 가난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농촌 문제와 관련해서는 농촌의 빈곤 문제가 아니라 농촌 자체가 아예 붕괴되고 있어 전체 인구의 불과 4.5%만이 농촌에 살고 있는 실정이다.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사회
아시아 각국이 근대화 과정에서 추진한 산아제한 정책은 오늘날 심각한 지경에 이르른 것으로 보인다. 출산율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사회 전체가 고령화되고 있다. 이른바 「가족계획」의 미명 아래 추진된 산아제한으로 인해 인공피임이 조장되고 남아선호사상과 어우러져 낙태가 조장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971년 평균 자녀수가 6명이었으나 2003년 3명으로 줄었고 일본의 경우에는 2003년 평균 자녀수가 1.29명으로 15세 이하 계층이 14.4%를 차지, 65세 이상 18%보다 적다. 한국은 이미 80년대에 출산율이 2명으로 줄었는데 2002년에는 1.17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인구 정책과 관련해 낙태 문제는 아시아 각국에서 암묵적으로 조장됐다. 한국은 70년대,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에 힘입어 암암리에 낙태가 조장됐고, 여기에 남아선호 사상이 결합해 오늘날 세계에서도 그 악명을 떨치고 있는 상황이다.
가부장제와 남녀 평등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한 현실은 아시아의 가부장제적 전통에 기인한다. 이는 대부분 아시아 나라의 현실적인 문제로서 여성들은 가정 안에서 남성과 차별 대우를 받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여성에 대한 차별은 그대로 이어진다.
이러한 풍토는 특히 여자 아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차별로 나타나고 이는 남녀 성비의 불균형에서 잘 볼 수 있다. 인도의 한 마을에서는 여자아이 3명에 남자아이 6~7명이나 되는 극심한 불균형 상태에 있고 전체적으로 남성 인구가 무려 4000만명이나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은 남녀 성비가 117대 100으로 세계적인 평균치인 105대 100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남아선호 사상은 산아제한 정책과 맞물려 낙태로 이어진다. 파키스탄에서는 강한 남아선호로 인해 임신한 여성이 초음파 진단을 통해 태아의 성별을 파악하고 여아일 경우 낙태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20년 전부터 「한 자녀 갖기」가 국가 정책으로 추진됨으로써, 여자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낙태를 선택하거나, 심하면 출산 후에도 버려져 죽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족 구조의 문제
혼인과 가정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이 점차 변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전통들이 산업화와 세계화의 영향으로 퇴색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특히 이혼율의 급격한 증가 현상에서 잘 나타난다. 2001년 통계에 32만쌍이 결혼하고, 13만5000쌍이 이혼한 한국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각국에서의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서구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지만 2000년 현재 848만쌍이 결혼했고 121만쌍이 이혼했다. 특히 상하이에서는 80년에 1.95%였던 이혼율이 10년 뒤인 90년에는 13.4%로 대폭 증가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아시아 국가들은 아직은 가족간의 유대가 비교적 양호한 상황인 것은 분명하지만 점차 악화되고 있다. 파키스탄은 아직 이혼율은 낮지만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가족내 여성 차별의 상황에 반발해 여성들의 이혼 청구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에서도 여성 노동 인구가 늘어나고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가능해지면서 여성의 이혼 요구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한편 대가족 제도가 중심이었던 아시아의 가정들은 점차 핵가족 제도로 급변하고 있고, 핵가족들도 점점 더 소규모화되는 추세이다. 또한 독신 가정, 편부모 가정, 동거, 동성애 가정 등 전통적인 가정의 범주를 벗어나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가정들이 일반화되고 있다.
늘어나는 이주민
아시아 지역에서의 이주민, 난민의 양산은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국가와 지역간의 긴밀한 연대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부분이다. 아시아에서 급증하는 이주현상은 경제적 빈곤과 세계화의 영향이 주 요인으로 보인다.
파키스탄은 이른바 「두바이 신드롬」으로 불리는, 산유국으로의 값싼 인력 수출이 심각한 가정 문제를 양산한다. 두바이, 아부다비 등으로 남성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남으로써 가정은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만 자녀 교육을 비롯한 가정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들은 값싼 노동력의 주요 수출국이 되고, 이들은 해외에서 심각한 차별과 착취를 받으며 일한다. 남아있는 가족들은 물론 이주민 자신들도 가족과 관련된 소중한 가치들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된다.
매스미디어의 복음화
문화의 세계화는 아시아가 간직하고 있는 가정의 가치체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매스미디어는 그러한 과정에 가장 큰 도구로 볼 수 있다.
인도 주교회의는 매스미디어가 세속적 가치를 확산시킴으로써 다양한 부작용을 가져왔음을 지적했고 인도네시아 주교회의는 인터넷을 포함한 첨단 커뮤니케이션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가치가 급속하게 변화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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