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3년 이탈리아 산 세베리노에서 태어난 성 파치피코는 25세 때 사제품을 받고 교회가 없는 마을을 찾아다니며 선교활동을 했던 신부다. 부드럽고 간결한 강론으로 신앙을 모르던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알리던 파치피코 신부는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눈이 멀고 말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다리마저 불구가 됐다. 하지만 파치피코 신부는 자신에게 주어진 장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오로지 기도에 전념하며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했다.
서울 수서동본당(주임=김준철 신부) 성 파치피코회(회장=정인영)는 장애의 고통을 이겨내고 오로지 신앙의 힘으로 하느님께 헌신해 온 파치피코 신부의 삶을 본받고자 결성된 장애인공동체다.
본당 내에 장애인들로만 구성된 모임이 만들어진 것은 드문 일. 사실 사회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 내에도 몸이 불편한 정신?신체 장애인들은 소외 받기 마련이다. 성당 가는 길은 멀기만 하고 막상 성당에 도착해도 장애인들의 앞을 가로막는 가파른 계단은 또 하나의 시련이다. 정신지체 장애인들은 미사 참례도 쉽지 않다. 장애인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주위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다. 파치피코회는 이처럼 교회 안팎에서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을 위해 2001년 만들어졌다. 본당 관할지역에 장애인 영구임대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본당에는 장애인 신자가 많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미사가 끝나면 급히 자리를 뜨고 본당 내 활동도 거의 없는 형편이었다. 파치피코회는 이를 안타깝게 여긴 본당 주임신부와 몇몇 신자가 장애인 소공동체 결성을 제의해 창립된 것이다. 모임 이름은 본당 주임 김준철 신부가 추천했다.
매달 첫째 주일 11시 미사 후 열리는 모임에는 현재 60여명의 장애인들이 참석하고 있다. 모임은 1부 본당 성가중창단 「체칠리아 찬미회」와 함께 하는 성가부르기, 2부 복음나누기·묵주기도 봉헌 순으로 진행된다. 특히 복음나누기 7단계로 진행되는 2부는 장애인들이 서로의 처지를 솔직히 털어놓고 장애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아울러 파치피코회는 모임을 통해 알게 된 회원들을 돕기 위한 봉사 활동도 하고 있다. 신체장애가 덜한 회원들은 장애가 심한 회원들을 위해 매주일 미사 때마다 차량을 운전해 성당에 올 수 있도록 돕는다. 주일 뿐 아니라 평일 병원을 가야하는 회원들을 돕는 일도 장애인들이 하고 있다.
본당에서는 모임 전 회원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매년 두 차례 있는 성지순례 예산을 지원하는 등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회장 정인영씨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많아 보다 활동적인 행사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면서도 『회원들이 모임을 통해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자신도 본당 단체에 소속된 신자라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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