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 흐르는 하이얀 명주실에 갖은 색 물을 들인다. 가닥가닥 실을 다회틀에 걸어 끈을 짜고 한가닥의 끈으로 매듭을 엮는다. 앞뒤가 똑같다. 좌우도 같은 대칭이다. 국화 잠자리 거북 석씨 등 모양새는 갖가지지만 기품있는 자태는 한결같다. 「균형과 질서의 미학」으로 불리는 전통 매듭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남녀노소는 물론 왕실에서부터 천민들의 생활사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용됐다.
한국 전통 매듭의 정수에 서있는 중요무형문화제 제22호 매듭장 김희진(율리안나.70.서울 세검정본당)씨가 지난 42년간의 매듭장이의 삶을 한데 풀어놓는다.
무대는 「한국전통매듭-균형과 질서의 미학」전.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 세계박물관대회(10월 2~8일)를 앞두고 한국예술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9월 7일~10월 10일 마련하는 자리다.
이번 전시회에서 김씨는 평생 손수 염색하고 엮은 매듭작품 133점과 수집품 157점 등을 내놓는다. 왕가의 상여를 장식했던 대봉유소를 비롯해 각종 의장용구, 국악기와 검에 달았던 매듭 등 일반에 최초로 공개되는 것도 많다. 특히 이 작품들은 전통매듭의 맥이 거의 끊어진 상황에서 매듭 연구를 시작한 김희진씨가 후진들을 위해 팔지도 않고 아껴 모아둔 귀한 작품들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전시회가 끝나면 이 작품들은 모두 박물관에 기증할 예정이다. 또 전국 각 대학과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옛 매듭작품들도 전시돼 명실공히 한국 전통 매듭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한눈에 아우르는 전시회로 꾸며진다.
매듭장 김희진씨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 전통 매듭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인물이다. 첫눈에 매듭의 아름다움에 홀렸던 김씨는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듭 연구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우리 고유의 기본 매듭문양 38가지를 복원해냈으며 기본 문양을 응용해 현대 생활에 어울리는 장신구와 다양한 실내장식들도 끊임없이 창작해내는 등 전통 매듭의 세계를 현대사회 안으로 확장했다.
또 매듭 예술의 창조적인 계승 발전을 위해 한국매듭연구회를 설립, 전문가 교육은 물론 일반인들을 위한 강좌까지 펼치고 있다. 연구회에서는 실생활에서 유용한 문화상품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특히 김씨는 84년 한국 선교 200주년 기념행사와 89년 제44차 성체대회 때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위한 제의와 매듭장식을 한 대형 양산(陽傘)인 「103위 성인산」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바티칸에 소장된 황금색 운문단 제의를 제외하고 교황이 입었던 각종 제의와 성인산 등도 만날 수 있다.
『매듭은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조형예술로 세계적으로도 경탄하는 예술장르입니다. 우리만의 아름다운 섬유예술분야로 더욱 크게 인정받는 전시회가 마련돼 무척 기쁩니다』
40여년 쌓아온 매듭예술의 삶을 총정리해 내놓으며 김씨가 가지는 소회다. 덧붙여 『대대로 이어온 장인들의 기술을 알리는 것만도 벅차다』며 자신의 이력을 뒤로하고 먼저간 장인들을 기리며 후진들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대장인의 모습이 더욱 크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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