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저의 버릇 중 하나는 일의 처리를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는 것입니다. 이러한 버릇은 성격 유형에서 유래한 면이 있습니다만 어떻든 고치고 싶고, 또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는 버릇입니다.
저의 학창 시절을 보면 이러한 버릇은 시험공부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평소에는 학과 공부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험 때가 되지 않으면 노트나 책을 잘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험공부는 하루 이상 하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시험이 내일로 다가와야만 밤잠을 줄이며 벼락공부를 합니다. 그러면서 결심해 보는 것은 이번 시험만 끝나면 평소에 좀 더 느긋하게 공부해 보리라 결심해 봅니다만 시험이 끝나면 언제 그런 결심을 한 양 다음 시험이 다가올 때 까지는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신부 생활을 하면서 조금은 변했습니다만 아직도 결정을 뒤로 미루고자 하는 버릇은 남아 있습니다. 그 하나가 지금 쓰고 있는 원고입니다. 매 주일 써야 하기에 주중에 좀 쓸까도 생각하고, 또 실제로 몇 번 주중에 써 보기도 합니다만 잘 되지 않습니다. 내일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긴박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러한 점은 죽음과 구원의 문제도 비슷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사실 우리는 죽음과 구원의 문제에 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긴박감이 없기 때문이요, 죽음과 구원을 오늘 지금의 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내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또 끝없이 내일이 주어질 것이라는 막연하고 헛된 희망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 상태는 뒤로 미루고자 하는 게으름이란 본능의 유혹과 결합되어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의 잘못된 삶을 살게 할 뿐 아니라, 결국은 아무런 준비 없이 죽음과 구원을 맞이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약은 청지기의 비유입니다. 내용은 단순합니다. 어느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축내다가 해고 통고를 받습니다. 그러자 이 청지기는 부정한 방법까지 동원하여 자신의 실직 대책을 세운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이 비유는 신앙인들 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당혹감과 함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입니다. 이유는 여기에 등장하는 청지기의 행위는 분명히 윤리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부정한 방법이란 것은 굳이 가톨릭 정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이면 누구나 다 악으로 생각하는 일이기에 이러한 이야기는 성서에 등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기에 처음 이 비유를 성서에서 대하다 보면 당혹감과 함께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당혹감을 증대 시키는 또 하나의 원인은 공동 번역 성서의 번역 때문입니다. 16장 8절에 보면 청지기가 약삭빠르게 일을 처리하자 주인은 그를 칭찬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문제는 이 「주인」을 누구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이 주인을 두 가지로 해석 할 수 있다 합니다.
첫 번째 경우는 공동 번역처럼 청지기의 주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번역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청지기의 주인으로 번역해 버리면 주인이 칭찬한 것이 청지기의 부정 자체를 칭찬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성서에도 「약은 청지기」 혹은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16, 8) 라고 쓰고 있고, 어느 주인도 그 따위 비양심적인 청지기를 칭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청지기의 주인을 뜻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으로 보는 것입니다. 공동번역 성서에서 주인으로 번역된 단어는 다른 곳에서는 주로 예수님을 뜻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를 예수님으로 보면 이야기의 흐름도 자연스럽고, 칭찬을 했다는 부분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기에 이 이야기는 어느 청지기의 사례를 예로 들고 그 청지기를 예수님이 칭찬한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예수님께서 비양심적인 청지기를 규탄할 것으로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뜻밖에도 예수님은 그를 칭찬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귀를 모을 수밖에 없지요. 바로 청중들의 주위를 환기시킴으로써 청지기의 비양심적인 면이 아니라 청지기의 실업 대책에 주의를 맞추고자 함이요, 청지기의 「실직 대책」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보다 더 중요하고 긴급한 「구원 대책」을 생각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의 시간 안에서 실직 대책을 세웠던 청지기처럼 구원의 현재성을 절감하면서 막말로 모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구원 대책을 강구하는 하늘나라의 청지기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내일의 일이 아니라 오늘의 일로 깨닫는 일과 구원의 절실함을 나의 가슴안에서 절감함이 청지기의 비유를 보면서 얻어야 할 교훈이라 생각해 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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