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시에 있을 때이다. 본당 신부님의 요청으로 고등부 예비신자반을 담당하던 어느 토요일 오후 교리를 하고 있는데 덩치 큰 남학생이 문을 열고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속으로는 들어와 앉기를 바라면서 계속 교리를 했다. 그런데 이 학생은 교리가 다 끝날동안 계속 서 있었고,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왔다.
나는 들어오든지 나가든지 선택할 것을 권했다. 그러자 슬그머니 뒷자리에 앉았다.
교리를 끝낸 후 나는 이 남학생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뇌종양을 앓고 있다고 말한 이 학생은 자기가 P병원에서 죽었다고 판명돼 영안실로 가다가 극적으로 살아났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병원 영안실로 가던 도중 학생의 엄마가 울고 야단법석을 치는 바람에 죽었다고 판명된 이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게 됐는데 놀랍게도 소생되었고 지금 이렇게 만날 수 있었다.
그 후 이 학생은 자기가 다니던 교회도 가보고 여러곳을 다녀보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아서 편한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이곳에 오게됐다고 했다. 그 아이가 주홍이었다.
이렇게해서 남녀 고등학생 예비신자가 새로온 주홍이까지 34명이 되었다. 학생들과 면담하면서 우리는 여섯달 동안 매일 저녁 교리를 하기로 약속했다. 특히 학생들은 영세후 쉽게 냉담할 소지가 많았기 때문에 힘들고 어렵지만 그렇게 하자고 약속을 하고 교리를 밤 9시에서 10시까지 진행했다.
우리는 매일 저녁마다 모여 교리를 하다 보니 분위기도 좋았고 하루라도 만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가 됐다. 여섯달 동안 한 덩어리처럼 힘을 모아 열심히 했고 그 결과 전원이 세례를 받았다.
물론 주홍이도 토마스라는 세례명으로 영세했다. 주홍이는 멀대처럼 키만 컸지 마음은 한없이 여리고 착했다. 학교는 휴학계를 내고 쉬고 있었다. 제4계명을 배우고 나서는 온 동네 사람들이 알 정도로 부모에게 효도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 아버지가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기다렸다 잠자리에 들 정도였다.
그런데 주홍이가 결국 우리곁을 떠나고 말았다. 주홍이는 세례받고 3주 후 하느님 품으로 갔다.
주홍이는 죽기 전날 내게 찾아와 『수녀님, 첫 고백할까요?』라고 묻길래 죄가 있으면 고해성사를 보라고 했더니 죄는 없다고 했다. 그저 좀 찜찜하다고 했다. 그러면 성사를 보라고 권했더니 결국 성사를 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자기 어머니와 이야기하는 도중에 갑자기 밖으로 나가 토하면서 『묵주! 묵주』하며 소리치길래 이 어머니는 비신자라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벽에 걸린 묵주를 손에 감아주면서 『예수님 따라 가거라, 예수님 따라 가거라』고 했다고 한다.
주홍이는 정말 주님 품으로 갔고, 그 후 그 집 가족 모두 주홍이가 다니던 성당으로 나와 신자가 됐다. 주홍이는 부모님을 하느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다시 소생한 천사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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