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라띠회의 기원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된다. 죽음과 폐허의 모습만을 남겨놓은 대혁명에 의해 교회는 분열과 박해아래 놓이게 되고 사회 전체는 비 그리스도화된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처지에서 오블라띠회 창립자 에우제니오 데 마제노드는 젊은이들과 죄수들 그리고 엑상 프로방스 지역의 천민들 사이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어려운 이들을 위해, 또 그리스도를 위해 평생을 바치길 원하는 사제들을 모았다.
이들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여러 마을을 찾아다니며 가능한한 모든 방식과 수단을 통해 「본당 선교- 공동체 피정」을 실시했다. 복음 전파의 지역적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이기도 했던 이 활동은 더불어 세계적인 수도회로 개방되는 씨앗이기도 했다.
『비록 우리들의 수가 적고 더욱 더 필요한 요구가 우리 지역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선교적 열의를 제한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영혼속에는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을 포용하고 그들에게 봉사하려는 정신이 있다』
활동에 있어 첫 번째 규칙을 이같이 밝힌 에우제니오 데 마제노드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스승으로 삼기 바라는 이들은 재산과 재능, 자신의 여가와 영혼.육체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며 교회와 이웃의 성화에 바칠 준비가 되어야만 한다』고 역설하면서 선교 단체 구성에 대한 생각을 드러냈다.
그에게 있어 선교를 위한 단체 구성은 복음 전파에 보다 효과적으로 부응하려는 의지와 사도적이며 공동체적 삶을 통해 성화에 이르려는 깊은 열망을 포함한 것이었다.
에우제니오는 수도회 첫 번째 목적을 농촌 지역 가난한 자들에 대한 복음 전파와 평신도 양성을 위한 본당 영적 피정 지도 등으로 삼았으며 신학교 운영과 청소년 사목 등으로 사도직 분야를 확대해 갔다.
초창기 수도회에 원동력과 새로운 활력을 부여했던 것은 「백성들에게」라는 전도 임무의 방향이었다. 1841년 캐나다로 수도자들을 파견한 에우제니오는 라틴아메리카에 이어 스리랑카 등 아시아 전역으로 선교를 폈고 남아프리카에도 진출했다. 이런 가운데 오블라띠회의 선교 역량은 에스키모인들이 사는 북극에서 호주 토착민, 파라과이 원주민들에 이르기까지 지구 구석구석으로 뻗쳐 나가게 됐고 수도자들 외에 오블라띠회 영성을 사는 27개의 단체가 생겨났다.
한국 진출은 1990년 당시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 요청으로 이뤄졌다. 「주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는 수도회 목적대로 한국 사회안에서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알리는 작업을 시작한 이들은 현재 노숙자 무료급식소와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 사목을 중심으로 병원사목 대학교 젊은이 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속적인 성소 계발 활동도 병행하고 있는 오블라띠회는 이를 통해 남한은 물론 북한과 중국 선교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또한 평신도 영성지도, 젊은이 사목 강화 구상과 함께 끊임없이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사랑으로 오블라띠회의 카리스마를 한국 교회에서 펼친다는 계획이다.
※홈페이지: http://www.oblate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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