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이른바 「기체험」이라는 것과 그 피해사례에 대하여 알아봤다. 이를 토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조심스럽게 내릴 수 있다.
우리는 기(氣)라는 것 자체를 부인할 수 없다. 「기」라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는 자연적인 물리현상일 수 있다. 곧 기는 순수한 자연적 에너지 또는 물리적 에너지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지난번에 확인한 바와 같이 소위 「기수련」에 빠진 신자들에게서 심각한 부작용 내지 피해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는 이를 「플러스 알파」 부작용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플러스 알파’ 부작용
「플러스 알파」란 바로 기치료 또는 기수련의 과정에 개입되는 「제3의 현상」을 말한다. 곧 기를 부리거나 기를 타거나 또는 기를 가장하여 기행세를 하는 제3의 에너지를 말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제3의 에너지는 성서적인 용어로 「악령」이라고 불리는 것과 관련이 깊은 듯하다. 성서에는 예수님이 악령들린 자와 대적하여 몰아냈던 사례가 숱하게 많이 나온다. 악령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재하는 존재로서, 사람 안에서 사람을 황폐화하고(마태 12, 43~45) 발작을 일으키고(루가 8, 29), 거짓된 기적과 표징과 놀라운 일들을 행할 수 있다(2데살 2, 9)고 기록되어 있다. 여하튼 우리가 말하는 「플러스 알파」의 계보에는 이 악령이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플러스 알파」의 개입 가능성은 기치료나 기수련을 매개해주는 사람에 크게 좌우되는 듯이 보인다. 대체적으로 한국에 유포되고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돈벌이 목적으로 상품화 된 것이기에 위험한 것으로 간주해도 된다. 「영험한 능력」이 상품경쟁력인 이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통력을 끌어들이려 한다. 그 과정에서 「플러스 알파」가 개입될 개연성은 매우 높아지는 것이다.
성서에 의하면 이 「플러스 알파」가 초래하는 결과는 신앙적인 부작용으로도 나타나고 정서적인 부작용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우선, 사도 바울로는 신앙적인 부작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훗날에 사람들이 거짓된 영들의 말을 듣고 악마의 교설에 미혹되어 믿음을 버릴 때가 올 것이라고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1디모 4, 1).
뿐만 아니라 성서는 악령이 사람을 「비참하게」(마태 12, 45)하고 「광야」를 헤매게 하면서(루가 8, 29) 사람을 정서적으로 피폐화 시키는 「거짓말의 아비」요 「살인자」(요한 8, 44)라고 폭로한다.
지면관계로 생략할 수 밖에 없지만 신흥영성(뉴에이지)의 실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방금의 진술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난다. 특히 신흥영성에서 가장 비싼 고급상품(500만원 이상)에 속하는 「채널링」이라는 것은 그들의 주장을 빌어 표현하면 「영계의 어떤 영적존재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거짓된 영들」의 장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종합적 식별
필자는 이론과 체험 양면으로 「기수련」 및 「기치료」를 대부분 접해봤다. 개인적인 관심에서도 그랬고 연구의 사명감 때문에도 그랬다. 거두절미하고 결론을 말한다면, 필자는 자연적인 현상으로서의 기(氣)를 인정한다.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에너지로서의 기,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 그리고 자연철학(동양철학)의 기이론 등은 실제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처럼 과학적으로 인정되는 자연적인 기에도 종류(種類)와 질(質)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의 종류 만해도 기본적으로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에 따라서 열두 가지나 된다. 거기다가 생명의 기운인 생기(生氣)가 있는가 하면 질병의 기운인 사기(邪氣)도 있는 등, 구분하기 나름으로 천차만별인 것이 바로 기이다.
그러므로 「기체험」이라는 것을 하나로 싸잡아서 옳음과 그름, 선함과 악함을 가려낼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히 부작용이라는 것이 있다. 그 부작용의 양상은 기를 매개하거나 기수련을 전수하는 주체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답답한 노릇이지만 사례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판별하는 수밖에 없다.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자.
기(氣)는 기다. 부인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다.
기체험은 기체험이다. 그냥 기체험이다. 기의 종류가 셀 수 없이 많듯이 이 기체험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런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좋지 않은 기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기란 자연과학적인 사기(邪氣)일 수도 있고, 「거짓된 영」의 교묘한 개입일 수도 있다.
성령은 성령이다. 성령은 삼위일체적이기 때문에, 성령을 체험하면 반드시 성부와 성자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되어있다. 성부를 부인하고, 성자를 배척하는 성령은 이 세상에 없다. 하느님을 부정하고, 신자들을 냉담에 빠트리고, 정신질환자가 되게 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성령」은 없다.
『하느님의 성령을 알아보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성령을 받은 사람이고 예수께서 그런 분이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적대자로부터 악령을 받은 것입니다』(1요한 4, 2~3).
성서의 입장은 명료하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루가 20, 25 참조). 바꾸어 말해서 기는 기고 성령은 성령이라는 것이다. 결코 기수련이 가톨릭 영성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종교다원주의의 시대에 이 무슨 고리타분한 이원론(二元論)이냐며 반론을 제기할 「가톨릭신자」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사람에게 반문하고 싶다. 그렇다면 애제자 베드로에게 난데 없이 『사탄아, 물러가라』(마태 16, 23)하셨던 예수님은 이원론적 근본주의자였던가? 대화와 일치운동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성서의 「영의 식별」 요구를 폐기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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