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좀 써달란다. 난 남들의 청을 잘 거절하지 못한다. 이것이 나에겐 장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거절하지 못한 청으로 인해서 곤란을 겪고 힘겨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중 하나가 군종신부로 가서 열심히 한 번 살아보자는 동창신부의 요구였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던가? 친구 따라 남쪽 땅에 있는 영천(3사관학교)에 가서 12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으며 시작된 군복생활을 11년째 하고 있다.
물론 살면서 힘겨웠던 시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종신부 노릇 잘(?) 한다고 소위 「말뚝」(장기복무) 박으란 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잘 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요구 때문이었겠지!
어찌됐든 난 고민 끝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신학교 시절 도서관 앞에 있는 돌에 새겨진 글 『Omnibus Omnia』(고린 전 10, 33)의 뜻을 묵상했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또는 모든 이에게 어떤 모습으로든 다가서겠다는 사도 바오로의 결의에 찬 말씀 아니시던가!
그렇다면 군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투신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하는 단순하고 순진무구한(?) 생각으로 난 타인의 청을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거절하지 못한 그 후의 삶은 내가 책임지고 살아가야할 몫이었다.
잦은 이동과 불안정한 식생활, 본 교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로움과 답답함, 때론 계급적으로 취급 당하는 문제며, 늘 하나의 직업층만 만나서 대화해야하는 단조로움, 잦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깊은 정을 주고 받지 못하는 사목생활과 늘 재정적 열악함으로 손벌려야하는 민망함 등등.
옛날 옛날에 「모든 이」(Everybody)와 「어떤 이」 Somebody)와 「누구도」(Anybody) 그리고 「아무도」(Nobody)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생겼다. 「모든이」는 그 일 쯤은 「누구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이」가 할 것이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은 결국 「아무도」 하지 않았다. 「모든 이」는 몹시 화가 났다. 왜냐하면 그 일은 「누구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꼭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 누구도 」 하지 않은 그 일 때문에 「모든 이」는 힘들어졌고 그로 인해 「어떤 이」도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누구도 해야 할 일이라면 나도 해야만 할 일임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우리의 길이요 내가 살아야 할 진리이고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님께서는 누구나 가야할 길이었기에 기쁘고 당당하게 그 길을 가신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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