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모습이 우습지요. 지난밤 잠까지 설쳤으니…』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과 군인주일을 앞두고 군종교구 요셉본당 임성호 신부를 만나기로 한 날 김선자(모니카.84) 할머니는 설레는 마음을 숨긴 채 홀로 쑥스러워 해야 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홑몸이 된 후 6.25를 홀로 맞아야 했던 할머니에겐 지금도 눈에서 스러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피난길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군인들의 시신,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던 그 모습에 사무쳐 나선 길이 오늘까지 「군」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 한 구석이 요동치는 걸 어쩔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양로원에서 함께 지내는 할머니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도 기분 나쁘지 않은 건 그만큼 외롭다는 뜻일까.
힘겹게 차에 오른 할머니는 이내 회상에 잠겨들었다. 가슴에만 묻어두고 있던 군인들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군종후원회가 발족되기 훨씬 이전부터다. 그저 군인들에게 조그만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신자들을 모아 위문을 다니고 떡을 쪄 날랐던 것이다. 처음 방문했던 부대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한켠이 먹먹해진다. 준비해간 떡을 허겁지겁 삼키면서도 못내 아쉬워하던 병사, 커피 한잔에 울먹이던 장병들의 모습은 그때 이후 한해도 거르지 않고 후원금은 물론 기도로 함께 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차가 한참을 달려 닿은 곳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할머니의 「하루 아들」을 자처한 임신부와 만나기로 한 곳이다. 오전부터 퍼부어대던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하늘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머니, 오시느라 힘드셨죠』
『힘들긴요. 신부님이 고생이시지요』
40여년을 지내온 서울 중곡동에서 지난해 경로수녀회가 운영하는 수원의 양로원으로 옮긴 후 모처럼의 나들이인 것이다.
『요즘은 군사목 하시기가 어떠세요. 지금도 그렇게 어려워요?』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 같아요. 갈수록 해야 할 일도 많아지고…. 어머니같은 분들이 계속 기도해주셔야죠』
두 사람의 대화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내 군사목의 현실로 빠져들었다.
『요즘도 초코파이 때문에 군인들이 이리 왔다 저리 갔다 그러나요? 위문다닌 지 벌써 몇년이 돼서 말이지요. 예전엔 돈이 생기는 대로 찾아 나섰는데…』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요』
시설이 낡아 수도꼭지를 틀면 녹물이 나온다는 임신부의 말끝에 혀를 차는 할머니의 안타까움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 교회가 제일 처지는 것 같아 속이 상해요. 자기 본당만 잘 되면 되는 줄 아는 우리 모습이 참 답답해요』
오랜 삶의 이력이 배인 할머니의 말은 여느 전문가의 분석보다 폐부를 찔렀다.
『신부님은 어떤 마음으로 장기 복무를 지원하게 되셨나요』
대화는 자연스럽게 삶의 이력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99년 처음으로 군사목을 시작해 제가 맡고 있던 부대에 신병교육대 성당을 지었죠. 여기서 세례를 받고 나오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며 너무 기뻤어요. 하느님 일에 새롭게 눈을 뜬 셈이죠. 어머니도 오랫동안 활동해오시며 어려움이 많으셨겠죠?』
『저는 다 잊었어요. 1년에도 몇 번씩 부대를 방문했으니 어디가 어딘 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아요』
동부전선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와 서부전선 최북단인 경기 연천 태풍전망대에 성모상이 세워지던 때를 회상하는 부분에서는 할머니도 감격이 북받치는 모양이었다.
『그 때가 예순이 넘었을 땐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몰라. 당시 6000만원이면 적지 않은 돈이었는데 한달만에 채워주셨거든요』
할머니는 두 성모상을 세우고 1원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성모상을 세운 후 관할본당에 정기적으로 관리비용까지 보냈다는 할머니의 정성이 도드라져 보였다.
『어머니같은 분들의 그런 보이지 않는 사랑을 먹고 군사목이 이렇게 성장한 것 아니겠어요』
한발 앞서 걸어가는 임신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할머니 얼굴에서는 푸근한 미소가 그치지 않고 있었다.
『평생 「엄마」 소리 한번 못 들어봤는데 신부님 덕분에 소원 풀었네요』
『어머니께는 좋은 반려가 있잖아요, 군종후원회. 그리고 저같은 아들이 어머니 사랑을 먹으며 자라고 있으니까 지켜봐주세요』
오랜 세월 져온 버거운 보따리를 풀어낸 듯한 할머니 손에는 이제 또 새로운 지향의 기도보따리가 들려있는 것 같았다.
■ 취재를 마치며
군을 「선교의 황금어장」 「청년사목의 미래」라고 인식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군사목을 후원하기 위해 지난 1970년 1월 「한국가톨릭군종후원회」가 발족한 후 서울을 비롯해 대구 부산 마산 등지에서 교구 군종후원회를 설립해 활동해오다 현재의 7개 교구로 늘어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그만큼 군사목은 사각지대에 놓여져 왔다.
후원회원이 2003년말 현재 전국적으로 7만79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한 이면에는 군사목에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쏟아온 이들의 존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숨은 노력이 밑거름이 돼 지난해 후원회비가 19억4816만여원에 이르는 등 괄목할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선에서 뛰고 있는 군종사제들의 활동을 통해 여전히 난제가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군사목이 몇몇 관계자들이나 뜻있는 이들에게 맡겨진 듯한 모습은 지금도 숙제로 다가온다. 해마다 20만명의 군인들에게 세례를 줘 2020년에는 전 국민의 75%를 신자로 만들겠다는 「비전 2020」전략을 세우고 매년 수백억원의 예산을 퍼붓다시피 하고 있는 개신교의 사례는 아직 우리와 무관한 듯한 모습이어서 아쉬움을 더하게 한다.
아직도 많은 병사들이 짧지 않은 군 생활동안 미사에 한번도 참례하지 못하거나 군종신부의 존재조차 모르고 전역하는 현실은 바로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닐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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