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영의 식별」을 위한 가톨릭적 관점을 알아봤다. 이제 그 연장선상에서 이른바 「채널링」이라는 것에 대한 영의 식별을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용어의 차이가 있을 뿐 신흥영성운동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것이 바로 이 채널링(channeling) 현상이기 때문이다.
‘귀신’들이 판치는 시대
요즈음 서점가에는 「채널링」을 소개하는 책들이 즐비하고 있다. 채널링은 말 그대로 TV 채널을 돌리듯이 영적 주파수를 맞추어 원하는 영(靈)들과 교신(交信)을 하는 것을 말한다.
채널링을 전파하는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는 특별한 방법을 통하여 영들과 교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영들에는 크게 두 종류의 영들이 있다.
첫째, 너무 갑작스런 충격을 받아 횡사 내지 객사하거나, 억울한 일로 감당할 수 없는 한을 품고 죽은 영혼들이 있다고 한다. 한국의 민간 통설에서는 이들을 귀신이나 원혼이라 부른다. 이들은 윤회(輪回)의 과정에서 비정상적으로 이탈하여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로서 이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위령제(慰靈祭)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오늘날 잡지물에서 천도제(薦度祭)를 지내준다는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이들은 우리가 겪는 질병, 우환, 액운 등이 죽은 조상들의 영혼이 천도하지 못한 악영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얼마 전 모 방송사의 TV특집물에서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속아 넘어가 적어도 몇 백만 원, 많으면 몇 천만 원을 날린 피해자들에 관한 고발이 다뤄진 일도 있다.
둘째, 소위 깨달은 영들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깨달음에 도달하여 장구한 윤회의 굴레를 벗어난 영들이다. 부처처럼 열반(涅槃)의 경지에 도달한 영들이 바로 이런 영들이다.
여기서 채널링은 주로 두 번째에 속하는 영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저들이 채널링을 권장하는 이유는 채널링을 통하여 깨달은 영들을 만남으로써 그 영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깨달은 영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그 깨달음의 경지를 나누어 받을 수 있고 그럼으로써 윤회의 과정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어떤 이들은 이런 채널링이라는 것을 통하여 「우주인」과도 교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은 우주인들이 유전자 조작을 통하여 창조된 존재 곧 우주인의 창조물이라고 한다. 채널링은 저런 우주인의 창조 예지를 나누어 받는 탁월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여하튼 채널링은 대부분 신흥영성운동들의 핵심 프로그램에 속한다. 다소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실제적으로는 이 채널링 현상이 그 배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채널링 현상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정리할 수 있다.
-신지학(神智學, Theosophy)이라는 이름으로 밀법전수적(密法傳受的)인 비교(秘敎)를 실행한다.
-심령술(心靈術, Spiritism)이라는 이름 하에 죽은 자의 혼을 불러내어 대화를 주선한다.
-영매(靈媒, channeler)라는 사람이 물질세계와 영혼세계를 연결시켜 준다며 인생상담, 영적상담을 중개한다.
-채널링을 해주겠다며 환각제를 이용하여 황홀경에 빠지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채널링과 관련된 이런 현상들은 우리 가톨릭 신자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당혹스럽게 한다. 이런 주장을 접할 때 우리는 자연스레 묻게 된다. 과연 귀신은 있는가? 원혼이라는 것이 정말 있는가? 또 깨달은 자들이 머무는 영계(靈界)가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들과의 교신이 과연 가능한가?
많은 가톨릭 신앙인들은 이런 물음들 앞에 서게 되면 얼른 답변하지 못하고 쭈뼛쭈뼛 망설이며 얼버무리고 만다.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채널링의 정체 - 귀신은 없다
가톨릭 신앙의 공식적인 답변은 간명하다. 『귀신은 없다』는 것이다. 가톨릭의 입장은 분명하다. 귀신은 없고, 원혼도 없고, 깨달은 영들이 별도로 존재하는 영계도 없다.
하느님께서는 죽은 자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죽은 자들은 천국, 연옥, 지옥 중 어딘가에 배속되어 있다. 만일 죽은 자의 영이 이들 셋 가운데 배속되어 있지 않고 구천(九天)을 헤매는 일이 정말 가능하다면 세상은 난리판이 될 것이다. 그 말은 곧 「지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배달사고」 또는 「탈주」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전능(全能)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하느님은 더 이상 하느님이 아니시다. 그렇게 허술한 하느님을 누가 하느님이라 인정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제로(0)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느님의 제어권(制御圈) 속에 예속되어 있어야 한다.
성서는 분명히 말한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히브 9, 27). 죽는 것과 심판 받는 일에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가 17, 23)에서도 부자가 「죽음의 세계」에서 치러야 할 고통을 벗어나고자 애원하지만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경종으로 끝난다. (자세한 것은 월간 「참소중한당신」 2004년 4월호 이철수 신부의 글 「구천을 헤매는 죽은 영혼」에 잘 나와 있다)
결론을 내려보자. 가톨릭교회는 귀신, 영매(靈媒), 초령((招靈) 그리고 채널링 등의 이름으로 설명되고 있는 모든 현상들이 사실은 성서적 개념인 「악령」의 장난이라고 본다. 바로 이 악령이 죽은 사람이 나타난 것처럼 귀신 행세를 하는 것이고, 한(恨) 많은 원혼 행세를 하는 것이고, 깨달은 영인 것처럼 속임수를 쓰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명명백백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유일신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곧 잡신들을 믿게 함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이탈시키려는 것이다. 악령은 사람들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수라도 동원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분명히 알자. 복음의 가르침은 명백하다. 귀신은 없다. 원혼도 없다. 그러므로 채널링은 거짓된 영의 속임수이다. 이에 반대되는 주장은 복음에 대한 훼손이다. 사도 바울로는 준엄하게 말한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가리워졌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나 가리워졌을 것입니다.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은 이 세상의 악신이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기 때문입니다』(2고린 4,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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