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은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추석)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이날 온 가족이 모여 한해의 수확을 감사드리고 세상을 떠난 조상들께 차례를 지내며 선조들의 공을 기억한다. 가톨릭 교회는 조상제사를 우상숭배가 아니라 「조상을 공경하는 아름다운 전통」으로 보고, 그 나라의 미풍양속을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조상제사를 허용하고 있다. 가톨릭 식으로 차례를 지내는 이들을 돕기 위해,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고유한 우리의 전통도 살릴 수 있는 주교회의의 「조상제사(차례)」 예식 시안을 소개한다.
■ 몸과 마음의 준비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며칠 전부터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하고, 가능하면 온 가족이 어려운 이웃을 찾아 자선을 행한다. 이 때에는 술을 마시되 취하지 않도록 하고, 고기를 먹더라도 탐하지 않는다. 불목(不睦)하고 있는 이웃이 있는지 살펴 기꺼이 화해하기로 다짐하며 고해성사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한다.
제사 하루 전에는 집 안팎을 정돈하고 제삿상과 제기(祭器), 향로, 촛대 등을 깨끗이 닦아 놓는다. 제사 참석자들은 목욕을 하고 당일에는 단정한 복장을 한다.
■ 예식 순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지난 2002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결정한 한국 고유의 상장례 예식서 「상장예식」을 통해 전통적 조상제사를 드리기 원하는 신자들이 기제사(忌祭祀)와 설, 한가위, 한식 등 모든 제사와 차례 때에 사용할 수 있는 조상제사 시안들을 내놓았다. 이 시안들은 유교적 제례 풍속과 가톨릭 전례의 접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외에도 한국교회에는 김수창 신부의 「차례예식」, 최기복 신부의 「가톨릭 조상제사의식」, 대구대교구의 「위령제와 위령기도」 등이 나와 있는 상태다.
모든 신자 가정이 이러한 예식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과 가문의 전통에 따라 나름대로의 예식을 선택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가톨릭의 전례에서는 축과 합문(제상을 차린 후 문을 닫고 밖에 나가 있는 행위), 고복(죽은 이의 혼을 부르며 지붕에 죽은 이의 옷을 매달아 두는 행위), 사자밥(죽은 이의 혼을 고이 모시고 저승으로 가라는 뜻으로 밥과 신발을 상에 차려 놓는 행위) 등은 미신으로서 금지된다. 또 위패는 「신위(神位)」라는 글자 없이 다만 이름만 써서 모시는 경우 허용이 된다.
여기서는 「상장예식」 시안으로 마련된 「조상제사(차례)」 예식을 소개한다.
1. 제사 준비가 되어 영정(위패)을 모시면 제주(祭主)는 제사의 시작을 알리고 십자 성호를 긋는다.
2. 참석한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두 번 절한다.
3. 제주는 영정(위패) 앞에 나아가 무릎 꿇어 분향하고, 잔을 받아 미리 준비한 그 릇(모사기: 茅沙器) 위에 삼제(三祭:술을 세 번 조금씩 따르는 것)한 다음 돕는 이에게 주면 돕는 이는 잔을 올리고 밥그릇 뚜껑을 열어놓는다. 이어 제주는 두 번 절하고 물러난다. 참석한 모든 이가 차례로 나아가서 잔을 올린다. 그러나 제 주 이외에 다른 사람은 삼제를 하지 않는다.
4. 이 같은 절차가 끝나면 제주가 조상께 고한다.
『주님의 보살핌으로 오늘 다시 ( )께 제사 올리게 되었나이다. 이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드리는 저희의 정성과 사모하는 마음을 받아주소서. 저희는 언제나 ( )를 기억하여 이 제사를 드리오니 ( )께서는 저희가 주님의 뜻을 따라 화목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5. 제주는 성서 가운데 고린토1서 2장 9절 또는 로마서 14장 7절부터 9절까지를 봉독하거나, 다른 알맞은 말로 참석자들이 조상을 기억할 것을 권한다.
바오로 사도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 전해줍니다. 『성서에는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해 주셨다」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Ⅰ고린 2, 9).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없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의 주님도 되시고, 산 자의 주님도 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로마서 14, 7~9).
이 말씀으로 우리 ( )께서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계시며 주님 안에서 우리와 하나 되시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 안에 한 가족입니다.
6. 이어서 돕는 이가 나아가 숟가락을 메(밥그릇)에 세운다.
7. 제주와 모든 참석자는 두 번 절(再拜)한다. 절 한 다음 조상을 생각하며 잠시 묵상한다.
8. 이어서 제주는 국그릇을 거두고 냉수나 숭늉을 올린다.
9. 제주는 모든 참석자와 함께 작별 배례로 두 번 절한다.
10. 제사를 마치면서 조상과 가족, 친척들과의 통교를 더욱 깊게 할 것을 결심하고 하느님께 감사 드리며 성가를 부른다.
11. 영정(위패)을 따로 모신 다음, 참석자들은 술과 음식을 나눈다. 이 식사는 사랑과 일치의 식사이며 조상과 가족간 통교를 더욱 깊게 하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축제의 기쁨은 이웃, 특히 소외된 형제들에게도 확장되어야 한다.
■ 차례상 차림
풍습·관습에 따라 간소하게
향상 중앙에 십자가 모셔야
제상은 주자가례에 의한 예법 등 여러 가지 전통적인 상차림이 있으나, 가문의 풍습이나 관습에 따라 차리면 된다. 그러나 향상(香床)에는 향로와 향합, 촛대 외에 중앙에 십자가를 모신다. 차례 음식은 간소하면서도 정성껏 차리되, 평소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돌아가신 이가 즐기던 음식을 차려도 무방하다(그림 참조).
1. 화려하지 않은 병풍을 치고 상을 편 후, 영정(위패)을 놓는다. 제상을 바라보는 위치에서 오른쪽은 동(東), 왼쪽은 서(西)로 친다.
2. 영정 사진 앞 1열은 숟가락을 담아 놓는 대접과 잔, 받침대를 놓는다.
3. 2열에는 「어동육서(魚東肉西)」라 하여 어적(생선 구운 것)은 동쪽(오른쪽), 육적(고기 구운 것)은 서쪽(왼쪽), 소적(두부 구운 것)은 중앙에 둔다.
4. 3열에는 육탕, 소탕, 어탕 3가지 종류의 탕을 놓는다. 마찬가지로 생선은 동쪽, 육류는 서쪽에 둔다.
5. 4열에는 「좌포우혜(左脯右醯)」라 하여 포(명태 문어 오징어)는 왼쪽에, 식혜(김치 동치미)는 오른쪽에 놓는다.
6. 5열에는 「홍동백서(紅東白西)」라 하여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색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7. 이밖에 「조율시이(棗栗枾梨)」라 하며 서쪽에서부터 대추(조) 밤(율) 감(시) 배(이)의 순으로 두며, 「생동숙서(生東熟西)」라 하여 김치 등 날 것은 동쪽, 나물처럼 익힌 것은 서쪽에 놓는다. 또 「두동미서(頭東尾西)」라 하여 생선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 「건좌습우(乾左濕右)」라 하여 마른 것은 왼쪽, 젖은 것은 오른쪽에 둔다. 「접동잔서(摺東盞西)」를 따라 접시는 동쪽, 잔은 서쪽에 배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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