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私財) 461억을 털어 「계룡산 자연사박물관」(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을 건립한 「청운문화재단」 이기석(루가.82) 이사장. 박물관 개관과 더불어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이지만, 정작 본인은 『하느님의 은총과 안배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 이라며 겸손해 한다.
지난달 21일 개관식을 갖고 일반에 공개된 「계룡산 자연사박물관」은 국제적으로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의 인증을 받은 국내 유일의 자연사박물관. 희귀 화석과 각종 광물, 보석, 지구과학표본 6만여점과 동식물표본 5만3000여점 등 총 20만7000여점의 전시물을 수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5000여점이 7개 전시구역에 테마별로 전시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수장품들은 1~2년 주기로 교체 전시된다.
국내 최초의 보건 전문대학인 「대전보건대학」의 설립자이기도 한 그가 국가가 나서기도 꺼리는 대규모 자연사박물관을 건립하게 된 속내는 뭘까.
『우리 아이들이 어릴적부터 박물관을 찾아 마음껏 즐기고 꿈을 키워갈 수 있는 과학교육의 산실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나라의 자연사박물관 수에 비례해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는 얘기도 있어요. 세계가 인정하는 자연사박물관이 여지껏 국내에 없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 그의 삶을 지탱해준 신앙을 빼놓을 수 없다. 충남 청양군 운곡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을 몸으로 겪으며 자란 그는 67년 가톨릭신앙에 귀의하면서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대전에서 안과의원을 개업한 것이 56년입니다. 의사로 산지 얼마되지 않아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의원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제가 하느님을 알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방탕한 생활에 빠지지 않았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보건의료 분야의 발전을 위해 지난 77년 「청운학원(靑雲學園)」을 설립하고 이듬해 대전보건대학을 개교해 지금까지 4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2000년 1월엔 의료법인 「청운의료재단」을 설립해 사유(私有) 병원이 아닌 사회 공공기관으로서의 토대를 구축했다.
박물관 건립에는 숱한 난관과 고통이 따랐다. 부지도 매입해야했고, 그마저 환경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애를 먹었다. 지자체나 국가의 지원은 전무했다. 세금혜택이라도 있으면 더 나은 시설과 교육을 위해 재투자했으련만. 그러나 행여 다른 오해를 살까 아쉬움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모든 것을 신앙으로 버텼다. 신앙은 끈기를 갖게 했고, 끈기는 희망을 낳았다.
『50년동안 수집해온 희귀 자료들이 오늘 저희품에 있게된 것은 모두 하느님의 도우심이지요. 돈만 있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장삿속으로 한 일이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을 겁니다』
교육자이자 의사이며,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 이력에다 문화인으로 1인 4역을 충실히 수행하며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인정받고 있는 이기석 이사장.
박물관장이기도 한 이 이사장은 『아무리 많이 모았어도 혼자서 보면 한점에 불과하지만 1만명이 보면 1만점의 효과가 있는 것』이라며 우리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맘껏 꿈을 펼칠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당부했다.
▲ 대전교구 유흥식 주교와 이원순 사무처장 신부가 조한희(로사) 부관장의 안내로 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다.
■ 계룡산 자연사박물관은?
ICOM 인증 국내 첫 박물관
국립공원 계룡산의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계룡산 자연사박물관」은 부지 1만2400여평에 461억원이 투입돼 지상 3층, 지하 1층에 건물연면적 3691평 규모로 세워졌다.
1층(공룡의 세계) 현관에 들어서면 「계룡이」로 이름붙인 거대한 공룡뼈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박물관이 자랑하는 길이 25m, 높이 14m에 이르는 초대형 초식 공룡 브라키오사우르스의 골격이다. 미국 와이오밍주 캔자스대 래리마틴 박사팀과 수십억원을 들여 공동 발굴한 후 대전보건대학에서 보존처리를 마쳤으며, 전세계에 4점 밖에 없는 희귀종. 발굴된 브라키오사우르스 가운데 원본 보존율 85%로 최고의 보존율을 자랑한다.
시베리아 투펜지역 지층에서 발굴된 높이 3.5m, 길이 5.3m의 맘모스(메머드)는 진품보존율이 90% 이상으로 7만5000년에서 10만년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드로마이사우르스, 시타코사우르스 등 공룡 화석과 암모나이트, 검치호랑이 등 다양한 희귀 화석이 전시돼 있으며 반달가슴곰, 검독수리, 흰꼬리수리, 물범, 어름치, 올빼미, 수리부엉이 등 다수의 천연기념물 박제는 당장이라도 살아움직일 듯 생동감을 준다.
우주의 형성 및 지구를 테마로 한 2층에는 행성의 생성, 활동에 대한 이해를 돕는 각종 운석과 광물 등 지질자료들과 조류, 곤충 표본들이 전시돼 있다. 146kg짜리 초대형운석, 전남 무안 앞바다에서 나온 세계 최대로 추정되는 고래뼈, 무게 767kg의 브라질산 자수정, 직경 2m가 넘는 규화목(硅化木) 등 볼거리가 많다.
3층에는 자연과 인간을 주제로 지난 5월 이장 파묘 과정에서 발견, 기증된 600년전 조선 전기 미라(일명 학봉장군) 2기가 의복 및 장례풍습 등의 연구 교육자료로 활용된다. 또 어류, 갑각류, 연체류 등 해양생물을 비롯한 3만여점의 동식물 표본도 전시됐다.
※문의=(042)820-7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