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인가? 창조론인가?」는 양자택일의 성질도 아니고 진위를 가리는 명제도 되지 않는다. 창조론은 세상과 인류의 시원을 종말 내지 완성을 내다보며 믿음의 내용을 설명하는 방법이고, 진화론은 지구의 생성과 생명의 출현, 그 변화와 발전, 소멸 등을 자연과학을 이용해 알아보고 설명하는 노력을 말해주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자연과학자들의 예리한 관찰과 자연과학의 발달로 「시대적 상식」을 뛰어넘는 연구 결과이며 새로운 지식을 세상에 알려주는 데서 나타난 한 이론이다.
진화론이 창조론과 심하게 충돌양상을 갖게 된 것은 19세기 중엽부터다. 일부 학자들이 진화의 사실과 그 법칙을 가설로 해 그리스도교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던 신앙, 윤리, 도덕까지 비판하며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곧 유물론적이고 무신론적 기준에서 판단했다. 진화론자들은 진화의 기본적 성격을 적자생존, 도태, 변이 등으로 규정하고 이 법칙을 사회, 문화, 도덕에까지 적용해 투쟁, 경쟁, 생존, 사멸 등은 필연이며 이 원리의 유용성에 따라 가치도 창출되고 인정하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과학과 신앙은 병립하거나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선언하며 자연과학 제1주의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스도인은 창조주 하느님을 믿고 새로운 하늘과 땅으로 완성될 세상을 믿으며 희망한다. 이는 이 세상과 별개의 것이 아니며 이 세상을 통해서 완성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유추를 통해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창조신앙 안에는 구원과 완성에 대한 신앙이, 사람이 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분을 통해서, 그분과 함께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는다.
창조론은 창조신앙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교부시대는 단순히 성서 말씀을 해설하는 수준이었으나 철학의 발전, 특히 자연과학의 발전과 함께 성서 고고학, 인류학, 언어학, 종교학 등의 발달로 18세기부터는 성서의 원문 비판, 역사 비판, 성서 주석, 성서 신학 등이 발전하였으며 성서의 폭넓은 새로운 이해와 함께 창조론도 새롭게 발전하게 되었다.
인간은 물질이 아니고 인간이기에 개인이나 사회나 인간답게 살아가야 하고 사람으로 완성될 숙제를 안고 있다.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하느님을 닮은 존재이며 닮아야 하는 존재의 의미다.
생명의 진화와 창조신앙을 조화있게 설명하려는 노력이 많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 「Humani Generis」(인류)를 통해 생명의 진화와 발전 등의 과학적 발견 등은 창조신앙과 배치되지 않음을, 요한 바오로 2세는 1996년 10월 22일 과학자들과의 만남에서 진화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유물사관에 의한 진화론을 배격함을 분명히 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진화론인가? 창조론인가?」라는 주제가 두 가지 학문 계열에서 학술적으로 세상과 인간의 시원론과 완성론에 대한 설명이라면 상호보완적 역할은 할 수 있는 것이며 또 그래야 한다. 반대로 창조론을 창세기에 묘사된 내용으로 자의적으로만 해석하여 진화론을 단죄하면 성서를 왜곡하는 것이다.
창조론이건 진화론이건 결국 인간의 존엄성과 구원, 현세 삶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인생관의 설명에서 그 성격이 좌우될 것이며 평가받게 되고 한계성도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진화설이냐 창조설이냐 보다 어떤 진화론이냐? 무슨 창조론이냐?를 우선 밝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을 더 진리에 다가서게 할 수 있을 것이며 참된 자유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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