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신(흥)영성운동이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는 정치적인 민주화가 진전되고, 어느 정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해소되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었던 민주화나 인권, 사회정의와 같은 보편 가치의 추구로부터 개인의 안녕과 평안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는 한 마디로 정신적, 육체적 건강의 추구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된 욕구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일정한 수련을 통해서 건강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기대와 목적을 갖고 다양한 수련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고, 여기에 전통 문화에 대한 추구가 결합돼 기수련이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신(흥)영성운동의 잠재성을 지니고 있는 기수련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단순한 건강, 생활 체육에 대한 관심으로 입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른바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계층들을 중심으로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같은 욕구를 지닌 사람들이 신영성운동에 참여하는 경향이 더 높게 나타난다.
한국 교회 역시 기수련 운동의 출발이 바로 이러한 건강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2001년 1월 12일 서울대교구 강우일 주교(현 제주교구장)는「기(氣)수련 문화에 대한 주의 환기」라는 제목의 사목서한에서 『기수련 문화는 처음에는 묵상이나 건강의 보조 수단으로 다가오지만 차츰 정신세계와의 교류가 전제되고 자연스럽게 종교적 차원으로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여기에 바로 기수련 운동이 지닌, 이전의 어떤 이단 사상이나 신흥 종교보다도 더 심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경향은 기수련 뿐만 아니라 이미 대중적으로 폭넓게 확산된 요가나, 각종 대체의학 요법들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 붐을 이룬 웰빙 바람으로 인해 이러한 경향은 더욱 부추겨지고 있다.
대부분의 기수련 단체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이 종교성을 지닌 단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실제로 일부 수련 단체에서 종교화, 우상화를 꾀하는 경향에 대해 자체적으로 우려하고 사이비화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수련 단체들은 근본적인 세계관에 있어서 그리스도교 교리와 충돌한다는 것이다.
단월드(전 단학선원)의 창시자 이승헌에 의하면 단학은 「인간이 기(氣)를 활용해 스스로 완성에 이를 수 있게 하는 한민족 고유의 학문」이라고 한다. 인간을 완성하는 학문으로서 단학은 「천지기운과 하나됨을 깨달아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결국 이는 뉴 에이지, 신영성운동에서 강조하는 우주, 자연과의 조화와 합일이다.
「국선도」는 수련단계를 3단계로 나눠 정각도(正覺道), 통기법(通氣法), 선도법(仙道法)을 제시하는데, 그 마지막 단계인 선도법 수련은 우주(하늘)와 하나되어 선인의 경지에 이른다는 수련 단계이다.
한국단학회 연정원(韓國丹學會 硏精院)은 기본적으로 어떠한 종교나 사상,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 중립적인 단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 생명의 근원인 숨결을 고르게 함으로써 자신을 영적, 육체적으로 가다듬고, 자신이 속한 우주와의 조화 및 합일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는 단학은 수련하는 단체로서 기본적으로 신(흥)영성운동의 요소에서 제외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경향 중 하나가 이른바 웰빙(Well-being)이다. 일차적 생존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보다 양질의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웰빙의 가치관은, 이에 편승한 상업주의와 대중매체의 관심과 지원을 바탕으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신드롬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웰빙의 추구가 7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 안에서 나타나고 확산돼온 뉴에이지, 신(흥)영성운동의 요소들에 대해 그것들이 일부 계층의 특별한 관심 대상이 아니라, 시간과 경제적인 여건이 충족된다면 다함께 추구해야할 미래 복지 생활의 이상, 모범으로 의식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건강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자리잡고 있다.
최근 가톨릭신문사로 접수된 피해사례를 몇 가지만 살펴봐도 건강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기수련 또는 요가 등이, 어느 정도 단계를 지나면서 신앙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급기야는 신앙 생활뿐만 아니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도 적지 않은 폐해를 일으키는 것을 볼 수 있다.
6개월째 기수련을 해왔다는 64세의 한 여성은 매일 아침저녁 기도를 바치고, 꾸준하게 꽃동네 봉사활동을 할 정도로 신앙 생활과 봉사에 힘써온 평범한 신자이다. 심장병이 있어서 자주 병원을 다니는데, 기수련을 하면서 통증이 꽤 줄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생활에 자신감도 생기고 평화스럽다는 느낌도 있지만 정작 신앙 생활에는 자신도 모르게 게을러진다는 것이다. 기도를 바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미사를 빠져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무의식 중에 들곤 한다는 것이다.
50대 중반의 한 여성 신자의 경우, 남편이 요가에 빠지면서 거의 가정 파탄에 이르게 된 사연을 토로했다. 이른바 「탄트라 요가」에 빠진 남편이 「나의 정체성을 찾겠다」며 걸핏하면 집을 나가고 신앙 생활과는 담을 쌓았다고 한다.
40대의 한 남성 신자는 자신이 본당에서 겪은 일을 전했다. 몸이 안 좋아 몇 사람이 함께 뜻을 모아 기수련을 시작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아예 수련에 빠져 수년간을 다니면서 신앙 생활이나 가정 생활 자체가 크게 변했다는 것이다. 성당에서 구역반장도 하고 꽤 열심히 성당을 다녔던 사람인데, 한참 기수련을 다니더니 『성당 안 다녀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며 성당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매스컴을 통해서 이른바 웰빙이 유행하면서, 성당 신자들 중에 적지 않은 여성 신자들이 요가 센터로 몰린다고 한다. 이렇게 신자들간에 기수련이나 요가 등에 빠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본당 사제는 이런 현황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 남성 신자는 『한 1~2년 동안 성당에 온통 요가 바람이 불어 여러 명이 성당에 안 나왔다』면서도, 『신부님한테 상의를 한 번 드려보지요?』라는 물음에 『그게 뭐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까, 어차피 몇 년 계시다 가실 분인데』라고 대답했다.
물론 극히 일부 본당의 경우이겠으나, 신자들의 신앙과 영성 생활에 대한 사목자들의 무관심이 혹시 이 정도까지 깊어졌나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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