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노골적인 사랑묘사에 지레 겁을 먹고, 성서에 별 희한한 내용도 다 있네, 하는 불편함으로 아가를 처음 대했을 때도, 그 이상하기만 하던 이야기가 왠지 새롭게 다가와 다시 꺼내 읽었을 때도, 그리고 지금 원고를 준비하며 또 다시 읽으면서도, 아가를 읽을때마다 공통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은, 「고통스러움」이다.
이상하기도 하지. 사랑을 노래한 아름다운 글이 왜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일까…. 며칠을 고심하다 마주한 대답은, 사랑과 구원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의 지독한 열망, 열정, 그리고 고통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각자 안에 구원과 사랑이 충만히 실현되기까지, 인간 내부에 혼재하는 갈망과 열정, 고독을 수용하는 과정은 사무치게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으며, 그리움과 슬픔이라는 언어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삶의 조건이며 현실인 것이다.
아가의 주제는, 그러므로,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랑을 찾기까지의 혹독한 「열망」과 「방황」, 「아픔」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만날 수 없고, 그래서 말을 건넬 수도 없는, 내 삶과 운명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바로 그 존재에 대한 그리움과 열망이야말로, 아가가 제시하고자 한, 인간실존의 현주소이며, 구원과 연관된 신학적 주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가의 여주인공과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언가를 찾고 갈구하며, 매일 포기하고 다시 일어나 희망을 품어본다는 점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녀의 고통은 우리에게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절대자 하느님이건,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그 사람」 혹은 「그 것」이건, 웬만해서는 내 앞에 잘 나타나주지 않는 바로 그 존재를 만나 내 사랑을 소통하기까지, 그리하여 구원이라는 최종 결과에 이르기까지, 인간 실존은 부재, 찾음, 방황, 체념이라는 벽을 정직하게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주부터 우리는 아가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게 될 것이다. 되도록 제시된 구절의 성서를 읽으면서 따라와 준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 같다.
1, 1~4(서곡)
처음에 등장하는 표제 「솔로몬의 노래들 중의 노래」에 대하여는 이미 충분히 설명한 바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해설을 생략하기로 한다. 솔로몬 저작에 대한 논쟁과 『노래들 중의 노래』라는 표현이 히브리어의 최상급 표현이라는 점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가는 그 서곡부터 여주인공의 주도적 역할이 강조되어 있다.
『아, 제발 그이가 내게 입맞추어 주었으면!』(2절)이라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강렬한 표현에 담아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말 번역(새 번역과 공동번역)에는 분명히 드러나 있지 않지만, 실제 히브리어 문장은 「입 맞추다」라는 동사의 어근(나샤크, nasaq)을 두 번 반복함으로써(필자 직역: 『그의 입술의 입맞춤으로 나에게 입맞춤해 주었으면』), 그리움(입맞춤)에 대한 최상급적 표현을 시도하고 있다.
2절은, 「당신」이라는 2인칭 대명사를 적용하고 있는 3~4절과는 달리, 「그」(3인칭)로 연인을 지칭하고 있어서, 3절 이하와의 작은 문학적 균열을 드러낸다.
3절은 특별히 연인의 「향기」와 그의 「이름」이 가지는 강력한 능력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는 사랑의 시에서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모티브이다.
더욱이 이 두 명사는 비슷한 히브리어 자음과 발음을 가지고 있어서(「향기」- 쉐멘, 「이름」-쉠), 시의 음성적 진가와 리듬을 살려주고 있다.
결국 저자는 「이름」과 「향기」를 상응시킴으로써, 사랑하는 이의 「이름」(히브리 어법에서 이름은 호칭의 기능보다 존재론적 가치를 의미한다)은 그 자체로 「향기」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임금』으로 연인을 제시한 표현(4절) 역시, 고대 근동 연애시에서 쉽게 발견되는 표현인데(1, 12 7, 6 참조), 사랑의 관계에서 연인이 차지하게 되는 절대적 우위성과 권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4절의 3행은 1행의 「우리」(여인과 그녀의 연인)와 구별되는 또 다른 「우리」가 등장하는데, 새롭게 등장한 이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본문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익명성」 역시 아가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으로(1, 8 2, 15 3, 3.5.6 5, 2.3 6, 10 8, 4.5.8~9.14 등), 문장과 문맥에 의지해서 그 정체를 추론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1, 5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이 이 「우리」에 해당되며, 여주인공의 입장과 마음을 이해하고, 그녀의 기쁨과 슬픔에 동참하는 친구들로 보면 무리가 없을 듯하다. 특별히 이들은 아가서 내내 「합창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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