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이 글을 써야한다고 했을 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늘 즐겨 인용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며 특히 젊은 군인들에게 다가갈 때 함께 나누었던 「오늘」이라는 시를 쓴 주인공을 찾고 싶다는 것이다.
이 시를 읽은 순간, 뭔가 시원하고 깔끔하게 내 생각의 중심을 정리, 요약해준다는 생각을 했었다. 거창하게 말하면 내 인생관과 일맥상통하는 글이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글이 「작자 미상」이라고 적혀 있어서 늘 아쉽고 답답했다. 내가 하도 인용하고 써먹어서(?) 어떤 이들은 내가 쓴 글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이 글은 이렇다.
세상에서 너 소유한 모든 것 중 가장 귀중한 것은 「오늘」이니
너의 구원자 「오늘」은 「어제」와 「내일」이라는 두 도적 사이에서 자주 십자가에 달리운다.
기쁨은 오직 오늘의 것
어제나 내일이 아닌 다만
「오늘」 너는 행복할 수 있으리니
하느님께서 오늘을 네게 주셨다.
모든 「어제」는 거두어 가셨고 모든 「내일」은 아직 그분의 손안에 있도다
우리네 슬픔의 대부분은 어제의 잔재이거나 내일에서 빌어온 것일뿐
너의 「오늘」을 고스란히 간직하라.
너의 음식, 너의 일, 너의 여가를 향유하라.
오늘은 너의 것이니
하루가 끝났을 때
『나 오늘을 살았고 오늘을 사랑했노라』고 말할 수 있게 하라.
「어제」나 「내일」이 아닌 「오늘」을 처절히 살아야 한다는 이 종말론적인 요구는 그야말로 그리스도교 복음의 또다른 핵심적 해석이다.
특히 군생활을 막 시작하는 젊은이들은 「어제」의 그 편안함과 자유로움 속에서 살던 자기의 모습과 내일까지 이 어려움이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답답해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며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때로는 해서는 안될 일들을 하기도 한다. 군종신부들은 그들의 불안한 마음과 정서를 함께 읽고 함께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형제들! 난 「지금」 「여기에」 있을 뿐이다. 「오늘을 산다는 것」 그것은 영원히 변치않을 가치,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수 있는 그런 가치있는 것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며 아끼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하게 되는 그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해서 기쁘게 살자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자세』라고.
어찌되었든 난 이 「오늘」이라는 글을 자주 인용하고 애용하고 있다. 이 글을 쓰신 분을 아시면 찾아주세요. 어차피 「오늘」의 주인공은 각자 「자기 자신」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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