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나라, 순교의 땅, 아름다운 대한민국에 다시 오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저는 정확히 23년 전에 처음 한국에 왔었고, 그때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돌아왔습니다. 이제 저는 교황대사로서, 교황님이 너무나 소중히 여기는 여러분들과 존경과 우정의 연을 맺을 특별한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한국과 한국 사람들, 한국 교회와 한국인 신자들에 대한 체릭 대주교의 인사말에서는 외교관으로서의 형식적인 수식어가 아니라,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감사와 기쁨이 느껴졌다.
제9대 주한 교황대사에 임명돼 10월 6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에밀 폴 체릭(Emil Paul Tscherrig, 57) 대주교는 13일 저녁 명동성당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피선 26주년 기념미사 후 가진 조촐한 환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사로서 한국에 온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체릭 대주교는 의정부교구장 착좌식, 주교회의 정기총회, 교황 피선 기념미사 집전 등 굵직한 행사들에 참석하면서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한국 교회의 젊음과 역동성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에서도 한국인 선교 사제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열정과 굳은 믿음에 감탄했는데, 지난 며칠간 한국에서 지내면서 주교단과 사제들, 수도자와 신학생, 평신도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한 교황대사관 서기관으로 갓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초년 사제로서 그는 고국인 스위스와는 너무 멀리 떨어진 이국 땅에서 처음으로 교황 성하를 직접 뵙고, 방한과 한국 순교자들의 시성식을 준비하는 가슴 벅찬 체험을 했다. 체릭 대주교는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그때의 추억을 한국 사람들의 친절과 함께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과 나눈 우정은 항상 이어졌고 한국에서의 경험은 제 생애에 있어서 아주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한국의 빼어난 경치와 친절한 사람들, 아름다운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두 차례의 교황 방한을 준비하고 수행한 체릭 대주교는 이후 교황의 해외 순방을 준비하고 기획하는 일에 참여하게 됐다. 한번은 칠레 산티아고를 방문하던 중 척추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로마로 돌아온 그는 우연히 한국에서 알았던 한의사를 만났고, 8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완치되자, 로마의 주치의가 말했다. 『도대체 무슨 치료를 받은거냐?』
체릭 대사가 주로 활동한 곳은 아프리카와 중남미, 특히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은 사제의 삶이 가난하고 고통 받는 하느님의 백성과 결코 떨어질 수 없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우간다에서의 3년, 부룬디에서의 4년은 인간의 비참과 가난, 고통의 극한을 목격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저는 인간 구원의 섭리를 펼치시는 하느님의 사랑도 함께 체험하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군사 독재 치하에서 내전에 시달리던 우간다에서 체릭 대사는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어린이들을 돌봐야 했다. 유엔의 도움을 얻어 처음으로 아이들에 대한 예방 접종을 실시하기도 했다.
부룬디에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굶주리는 주민들에게 식량을 전달할 수 있었다. 특히 불과 600∼700만명의 인구 중에서 100만명이 집을 떠나 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탈리아인 후원자의 도움으로 여성과 어린이를 위해 400여채의 집을 지어준 것은 지금도 가장 큰 보람으로 기억한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믿음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시복되지 않은 순교자들이 무수합니다. 인종 분쟁의 와중에, 이웃을 죽이라는 군인들의 명령을 거절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순교자들을 떠올렸다는 그는 주교와 사제들 역시 이들의 고통에 한치의 틈도 없이 일치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주교가 상시적인 테러의 위협에 노출돼 있고 실제로 어떤 주교는 가족들이 몰살당했다. 체릭 대주교의 후임으로 부룬디에 온 후임 대사도 살해당했다.
『아프리카는 가난과 고통과 슬픔의 대륙입니다. 신앙의 열정과 커다란 성장 가능성을 지닌 한국교회가 이 대륙의 교회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었으면 합니다』
체릭 대주교는 세계 교회, 특히 아시아 교회 안에서 한국 교회의 역할에 대해 크게 기대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서구 교회의 쇠퇴는 사실입니다. 아시아 교회는 그래서 제삼천년기 세계교회의 희망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가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그런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새복음화를 강조하셨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미 선교사들을 전세계에 파견함으로써 세계 교회의 복음화 노력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는 새복음화는 아시아 대륙 뿐만 아니라 세계교회가 함께 노력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한다.
『새복음화는 항상 교회 스스로의 쇄신 노력을 바탕으로 합니다. 개인과 공동체가 회개하고 그 힘으로 밖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가르침」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복음화에 있어서는 매일의 증거(witness)의 삶이 중요합니다』
한국의 복음화 노력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북한과 중국 선교. 체릭 대사는 무엇보다도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스도인의 무기는 기도입니다. 남한 교회에서도 북한의 복음화를 위한 여러 소임과 활동들이 이뤄지고 있을 것이지만 우리의 가장 중요한 활동은 기도가 돼야 할 것입니다』
대사로서 체릭 대주교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소명은 교황을 대신해 한국 교회에 성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외교관으로서 한국 정부와 교황청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 또한 그의 일이다. 이를 위해 체릭 대사는 자신의 삶 자체가 교황성하의 단순하면서도 온전히 봉헌된 삶을 본받고자 노력한다고 한다.
체릭 대주교는 아프리카에서의 고난의 체험, 그리고 그 체험을 통해 얻은, 사제는 하느님 백성과 함께 해야 한다는 생생한 확신을 바탕으로 한국교회에서도 주교단과 성직자들은 물론, 신자들과 깊은 우정과 친교를 나눌 생각이다.
불과 150명 남짓한 주민들이 사는 해발 1000m의 스위스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처음 받은 선물이 스키였다는 체릭 대주교는 20년 전 혼자서 서울의 모든 산들을 누볐다. 나중에는 열 댓명 남짓으로 등산회를 만들어 함께 산을 찾았다.
『세월이 많이 흘러 산길을 모두 잊어버렸다』는 대사는 『길을 익힌 다음에 같이 등산 한 번 하자』며 『한국의 아름다운 풍광에 경탄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사람과 한국 땅에 깊은 애정을 가진 체릭 대주교는 외교관이라기보다는 한국 교회의 친구가 될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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