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자들은 왜 기수련에 빠지는가?』라는 질문에 앞서서 『현대인들은 왜 신(흥)영성 운동에 빠지는가?』라는 질문에 먼저 대답할 필요가 있다.
교황청은 이미 지난 1986년, 신(흥)영성 운동의 서구적 이름인 뉴 에이지 운동에 사람들이 매료되는 이유들을 9가지로 분류 제시했다. 이른바 「바티칸 리포트」라 불리는 이 분석은 기수련에 빠지는 사람들의 심리를 매우 정확하게 성찰하고 있으며, 「뉴 에이지」를 「신(흥)영성」, 혹은 「기수련」으로 바꿔 읽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에 따르면 첫째, 교회의 공동체성과 신자들의 소속감이 날로 떨어짐에 따라서 이러한 욕구에 대해 준거 집단 또는 집단적 소속감을 쉽게 제공하는 신(흥)영성 운동은 매력적일 수 있다.
둘째로, 그리스도교에서 흔히 수행은 어렵고 힘든 것으로 인식되는데 반해 신(흥)영성 운동, 기수련 운동은 누구나 쉽게 수련을 통해서 원하는 답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셋째, 신(흥)영성 운동은 정신적, 사회적인 분열을 경험하는 현대인들에게 영적 안식과 치유, 통합, 조화, 평화 등의 가치를 제시하며 넷째, 세계적인 보편교회의 성격을 지닌 거대 종교로서 가톨릭은 토착화에 대한 욕구에 둔감한데, 신(흥)영성 운동은 이 문제를 매우 손쉽게 해결해준다. 기수련 운동은 서구의 뉴 에이지 운동에 민족 문화의 전통에 대한 욕구가 결합된 것이다.
다섯째, 신(흥)영성 운동에서는 다양한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 참여의 정도에 따라 기꺼이 그들을 최고의 존재로 대접해줌으로써 현대인들의 고독을 위로한다.
여섯째, 가톨릭은 「초월」에 대한 현대인들의 관심과 욕구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데 반해, 신(흥)영성 운동에서는 모든 종교와 사상에서 추출한 좋은 것들을 적절히 혼합해 값싸게 제공한다.
일곱째, 신(흥)영성 운동은 영적 지도자를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신속하게 부응해 빠른 시간 안에 영적 스승을 제공해주며 여덟째, 각박한 세상에서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욕구에 부응해 말 그대로 「새로운 시대」를 약속한다.
마지막으로, 신(흥)영성 운동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최상의 미래이기를 바라는 현대인들의 심리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참여와 투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려고 노력한다.
신(흥)영성 운동은 현대인들의 욕구와 심리에 적절하게 부응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쉽게 끌어 모은다. 이런 배경 속에서 우리나라에서 기수련 운동이 급속하게 확산된 데에는 앞서 살펴봤듯이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 웰빙에 대한 욕구가 크게 기여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면, 가톨릭 신자들이 유별나게 기수련 운동에 많이 빠지게 되는 요인은 무엇일까.
사목자들이 어렴풋하게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신자들이 신(흥)영성 운동에 빠져 있다. 일단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같은 성당에 다니는 이웃 신자들에게 운동을 권유하게 되고 이에 따라서 항상 서너명 이상이 함께 기수련 단체로 발걸음을 향하곤 한다.
그러면 왜 이들은 가톨릭 신자들을 주 포섭 대상으로 고려하는가.
그 첫째 이유는 가톨릭 신자들이 대체로 신앙에 대한 정체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강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개신교 신자들과 비교해보면 분명하게 나타난다. 가톨릭 신자들은 흔히 공공 장소에서조차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자기 신앙을 표시하는 개신교 신자들을 향해 불만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곤 한다. 보다 점잖고 우아하게, 자기 신앙을 감추는 가톨릭 신자들은 자기 신앙의 정체성에 대해서 확고한 태도를 갖고 있지 못하다.
각종 부흥회나 수양회, 철야기도회 등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드러내는 개신교 신자들은 따라서 기수련 운동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으며 아예 처음부터 접근을 피하게 된다. 반면 체계화된 교리와 전례, 성사 중심의 가톨릭 교회의 경우, 신자들은 영적인 욕구와 종교적 체험이 부족하고 따라서 이러한 하느님 체험의 부족을 기수련 등을 통해서 확인하고 보상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교회는 여전히 영적 체험, 신앙적 체험의 부족함을 채워줄 영성 프로그램의 부족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미비하고 따라서 신자들은 교회 안에서 채워지지 않는 영적 체험을 찾아 밖으로 향하기 십상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문제를 발견한다. 대중적인 영성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2000년이 넘는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지닌 가톨릭 교회 안에는 심오한 영성 전통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우 전통 있는 영성 수련법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일반 신자들이 접근하기에는 매우 어려워보이고, 실제로 신자 대중들의 욕구에 비해서 양적인 면에서도 부족하다.
물론 최근 들어서 한국 사람들에게 적합한 영성 프로그램의 필요성이 계속 지적되고 실제로 일부에서는 토착화된 영성 수련법이 제시되고 있기도 하며, 여러 가지 강연이나 기도회 등에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수련 운동은 교회의 여러 영성 프로그램에 비해서 매우 편리하고 단순하며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자칫 이에 현혹되기가 쉽다.
이처럼 신자들이 기수련을 포함한 여러 가지 신(흥)영성 운동에 참여하게 되는데에는 교회 안에서, 사목자들 조차 신(흥)영성 운동에 대해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경각심을 갖지 않고 있다는 점에도 크게 기인한다. 다시 말해서, 사목자들까지도 이러한 경향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하며 따라서 혼란에 빠진 신자들이 상담을 하고자 해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적절한 상담을 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수련이나 요가 등에 접하게 된 계기가 본당에서 집단으로 신청을 해 수련을 실시한 사례도 발견되고, 그러한 경우 문제가 있다고 느낀 신자들은 중간에서 그만두지만 나름대로 매력을 느낀 신자들의 경우에는 수년 동안 수련을 지속하다가 신앙은 물론 가정 생활에도 크게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경우가 있다.
수도자들 가운데에서도 주위의 신자들에게 기수련이나 요가를 권하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더라도 스스로가 수행에 참여함으로써 주위 사람들이 아무런 경각심 없이 여기에 빠져들 빌미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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