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입던 전투복이 아닌 사막 전투용 전투복을 입고 특별(?)전세기를 타고 이역만리 낯선 땅, 일촉즉발의 위험에 노출된 전장으로 떠나는 형제에게 하느님의 보호하심과 성모님의 눈물어린 전구하심을 빌어마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뒤로하고 이라크로 떠나기 전 함께 저녁을 들며 나눈 얘기는 정말로 진지하고 거룩하기까지 했습니다.
『파병은 결정되었고, 누군가는 가야하고…. 그리고 난 군인이다』
너무나도 단순하고 정갈한 논리로 담대하게 「가야함」을 얘기할 때, 전 그 앞에서 파병의 허구성과 침략전쟁의 부당성을 얘기하기엔 이미 너무 깊숙이 진행된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당황스럽고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군종신부의 비애는 어쩌면 이런 것인가 봅니다. 군종신부로 임관하기 위해 영천 3사관학교에서 훈련 중일 때 성당앞에 우뚝 서있던 「신앙의 전력화」라고 쓰여있는 큰 돌덩이 앞에서 느꼈던 참담함으로부터 시작된 마음이 이제는 내가 사목하는 지역의 특공대원들과 그 책임자로 떠나는 신자 대대장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용하던 묵주를 쥐어주고 기적의 패를 군번줄에 꿰어주며 그저 『건강하게 있다가 돌아오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비애감으로 이어지고 있네요.
「이라크전쟁을 막지 못한 참회의 단식기도」를 수십일 동안이나 하신 김재복 수사님의 거룩하고 숭고한 몸짓 앞에서 난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던 그분의 행동은 추호도 거짓없이 존경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셨습니다. 보이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고 정말 사생결단하고 풍찬노숙하며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수사님의 모습 속에서 참으로 내 자신의 한계와 비굴을 맛봅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따라할 수 없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현재 나도 같이 군복을 입은 군종신부이기 때문일까요? 「군인은 싸우는 사람이 아니고 평화를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이다」는 확신을 갖고 살며 지금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안될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은 각 개인의 가치관과 사생관 그리고 국가관을 개별적으로 인정받기 힘들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욱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오스팅 형제님! 오늘은 꽤나 내가 진지해졌네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신이 가신 길이 정말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죠.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그 자리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요즘은 많이 시원해졌답니다. 겨우 섭씨 39도정도 밖에 안되거든요!』라고 하며 떠난 당신의 마지막 음성이 오늘도 묵주기도를 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게 만드네요.
모두모두 건강하게 잘 다녀오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