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부터 「신비」는 언제나 내게 최대의 매혹이었다. 별로 신비로울게 없는 평범한 운명과 삶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하여간 어른이 된 이후에도, 그림책이나 사진첩 중,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것은 이내 완독해버리지 않고는 못배긴다.
신비…. 「비밀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는 정의를 생각해본다. 당신이 당신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주변에 대하여 별 관심을 느끼지 못하는, 그저 적막하기만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건, 아마 비밀이 너무 없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제밤에 끓여먹은 라면이 컵라면인지 사발면인지, 그저께 사온 아이스크림을 얼마만큼 먹었는지를 모두 알고 있는 사이라면, 당연히 비밀 같은게 있을리 없고, 그러니 「신비로움」이라는 오묘한 질서는 도무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종교는 자체적으로 「신비」를 속성으로 하고 있다. 아무리 깊이 연구해도 완벽에 이를 수 없는 학문이 신학이요, 신 존재에 대한 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심연과 신비 때문에 종교는 바닥을 드러내는 법이 결코 없다. 숲도, 바다도, 마찬가지이다. 숲과 바다가 그토록 아름답고 신비로울 수 있는 이유는 그 어두움과 심연에 가려져 있는 비밀 때문이 아니던가.
이번 주에 살펴볼 아가의 세번째 시는, 아무리 찾아다녀도 만나지 못하는, 그래서 철저히 자신의 존재를 비밀에 붙이는 사랑의 신비를 그리고 있다. 여주인공은 연인을 찾아 현실과 꿈을 헤매지만 어디에서도 그를 만나지 못한다. 그는 늘 그녀 안에 살아있어 함께이지만, 실제로는 만나지 못하기에 철저히 부재하는 것이다. 그런 역설과 모순 때문에 고독과 고통이 시작되고, 동시에, 그 고통스런 관계를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신비」는 사랑을 지속시킨다. 이렇게, 현존과 부재의 딜레마는 사랑의 중심에 서있는 원리이며, 또한 모든 사랑의 원형인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서도 작용되는 비밀, 곧 신비인 것이다.
세번째 시(3, 1~5, 1)
아가의 「세번째 시」는 여러 장면들의 결합으로 되어있는, 긴 분량의 노래이다. 밤 장면(3, 1~5) -> 솔로몬의 결혼식(3, 6~11) -> 여자의 몸에 대한 찬가(4, 1~7) -> 레바논으로(4, 8~15) -> 사랑의 정원에서(4, 16~5, 1)가 그 대략적 내용이다.
밤 장면(3, 1~5)
3, 1~5는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밤 이야기는 5, 2~6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특히 이 두 본문은 「찾음」-「잃음」 / 「존재」-「부재」라는 상반된 모티브를 교차시키는 형태로 되어있다.
3, 1~5은 특별히 『찾다』(히브리어, 바카쉬)-『발견하다』(마짜)-『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여』(쉐아하바 납쉬)를 정확히 4번 등장시킴으로써, 그 체계적 구성을 보여준다.
노래를 시작하는 이는 여주인공이다. 그녀는 밤새도록 연인을 찾았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고 고백한다(3, 1.2 5, 6). 「현존」-「부재」의 문제는 모든 연애시에 절대적으로 등장하는 소재이며, 또한 교회전통의 유명한 신비가들이 거듭 사용해온 주제이기도 하다.
신비가들은 「영혼의 밤」이라는 주제로 이를 설명해왔는데, 이들에 의하면 모든 사랑 안에는 「자체적 밤」이 있기 마련이다.
고독과 방황, 혼란과 극적인 부재의 밤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체험하게 하지만, 좀 더 깊은 진리와 관계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은총의 장이된다. 아가에서 특별한 점은 이러한 고독과 고통의 고백이 언제나 여주인공의 몫이라는 점이다.
연인을 찾기 위해 어두운 성읍의 거리와 광장을 돌아다니는 그녀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2절)라고 다짐하지만, 그녀가 만난 이들은 도시의 야경꾼들뿐이었다(3절).
그러나 인간이 모든 노력을 접는 순간에 기적은 일어난다. 돌연히 자기 앞에 서있는 연인을 만나게 되니 말이다(4절). 이어 여인은 연인을 자기 어머니의 침실로 인도하는데, 여기서도 여인의 적극적인 태도가 부각되어있다. 전통적으로 어머니의 침실로 신부를 인도하는 이는 신랑이기 때문이다(창세 24, 67 참조).
침실로 인도된 연인들의 이야기는, 5절에서 갑자기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에게 사랑을 방해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내용으로 마무리 된다(2, 7 참조).
생명을 낳게 하는 사랑
아가의 연인들은 이제 어머니의 침실로 들어갔다. 사랑은 생명을 낳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고, 그 과정을 통해, 부모들 역시 자신을 거듭 낳게 된다. 굳이 결혼한 관계가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인간은 사랑을 통해 자신의 한 시절을 넘기게 되며, 새로운 눈과 의식으로 거듭나게 된다.
자신을 넘어서지 않으면 절대로 타자에게 도달할 수 없는 것, 그 값진 극복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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